[ 황정수 기자 ]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기자실의 복사기는 쉴 새 없이 종이를 뱉어냈다. 더불어민주당이 이메일로 보낸 ‘2017년 세법개정안’이었다. 기재부 출입기자들의 관심은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발표했을 때만큼 컸다.
더민주는 ‘세법개정안’ 2페이지에서 첫 번째 원칙으로 ‘조세부담률 상향 조정’을 제시했다. 정부가 빚을 늘리지 말고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경기부양과 복지확충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기대를 갖고 더민주의 세법개정안 페이지를 넘겼다. 내년 대선을 앞둔 야당이 적었을 것이라곤 믿기 힘든 문구가 등장했다. 세금 안 내는 사람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더민주는 ‘2014년 기준 48.1%까지 확대된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축소해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납세자 간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세법개정안 어디에도 구체적인 면세자 축소 방안은 없었다. 게다가 세법개정안에 ‘정부·여당과 협의 하에 개선방안 마련’이라는 문구도 끼워넣었다. 면세자 축소를 사실상 ‘장기 과제’로 돌려버린 것이다.
‘중산층 서민에게 따뜻한 세제’ 항목부턴 오히려 면세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조세감면책이 계속 등장했다. 저소득층 대학등록금 세액공제, 월세 세액공제 공제율 및 기준 상향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더민주의 세법개정안이 정부안보다 면세자를 더 늘릴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는 정확한 세금감면액도 제시하지 못했다.
더민주의 개정안이 시행되면 세금을 내는 사람의 부담만 커질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오락가락’ 세제로 면세자 비율이 높아지는 동안 소득세를 낸 근로자 1인당 납부액은 2013년 201만6000원에서 2014년 293만2000원으로 45.4% 급증했다. 한 세제 전문가는 “더민주도 면세자 축소에 따른 조세저항을 두려워한 게 아니겠느냐”며 “결국 쉬운 길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황정수 경제부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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