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처리 차질 계속되면 글로벌 경쟁서 뒤질까 걱정"
의사들 "내 이름 빼달라"
시연 의사들 쉬쉬할 정도로 정부·의협 갈등의 골 깊어
국회 통과 미적대는 사이 미국·일본 이어 중국도 사업 시작
[ 조미현/김근희/장진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4일 휴가 후 첫 현장 방문지로 충남 서산시의 서산효담요양원을 찾은 것은 원격의료 확대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강한 의지에서다. 서산효담요양원은 지난해 5월부터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가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요양원 입소자와 가족, 대한노인회장, 대한의사협회장과 간담회를 하고 “어르신과 장애인 등 병원에 다니기 힘든 사람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의료 사각지대 없앤다
정부는 2009년 18대 국회에 처음으로 의사의 원격 진료와 처방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의 昭?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법률 개정의 첫 관문인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한 차례도 상정되지 못했다. 19대 국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격의료가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다” “대형병원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다”는 야당과 의료계의 반대가 거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무회의 등에서 “의료취약 대상 국민에게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뿐 아니라 관련 산업 활성화를 통해 연간 3만3000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산업”이라며 원격의료 도입의 당위성을 강조해왔다. 이날도 “우리나라는 의료 인력이 우수하고 정보기술(IT) 강국이어서 최고의 원격의료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면서도 “국내에선 오해 때문에 차질이 빚어져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된다”고 했다.
정부는 노인요양시설 군부대 도서지역 등에서 시행 중인 시범사업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방식으로 의료 사각지대를 우선 없앤다는 방침이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그동안 거동이 불편한 시설 입소 노인들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시범사업을 시작하면 입소 노인의 다양한 질환 발병에 즉각적 대처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발목 잡는 국회·의료계
시범사업에 참여한 일선 병·의원 사이에서는 원격의료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차츰 나오고 있다.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한 의사는 “원격의료를 시작한 뒤 요양원 환자를 효율적으로 진료·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원격의료를 대면 진료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 오진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병·의원들은 의사 이름이나 병원명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서산효담요양원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사도 마찬가지다. 의사협회 등이 강경하게 반대하는 상황에서 자칫 피해를 볼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협회 등 의료계가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분위기 때문에 사업 참여 자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도 뛰어든 원격의료
국내에서 원격의료 시행이 미뤄지는 사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도 관련 산업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은 1997년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원하는 메디케어를 통해 원격 상담에 보험을 적용했다. 일본은 섬 등 외지에 사는 주민과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허용하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최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했다.
중국에서는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한 원격의료 사업이 시작됐다. 안무업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원격진료센터장은 “세계적으로 의료와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이 이뤄지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을 의료 영역으로 수용하려는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미현/김근희/장진모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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