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업체·해외투자 금융사
'슈퍼달러' 전망한 환헤지 전략
환율 추가 하락땐 손실 위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속 외환당국 시장개입도 한계
선제적 대책 마련 시급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10원대로 떨어짐에 따라 국내 수입 업체와 해외 투자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역(逆)키코’ 사태를 우려하는 시각이 고개를 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것으로 보고 달러당 1200원 이상에서 환헤지를 해놨는데, 환율은 이를 밑돌고 있어 그만큼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달러화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전망치 밑도는 원·달러 환율
역키코 사태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내 수출 업체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온 ‘키코(KIKO)사태’의 반대 개념이다. 키코란 원·달러 환율 하락에 따른 수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 수출 업체가 가입한 환헤지 파생상품이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익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상승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손실이 급증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당시 달러당 80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원·달러 환율이 1600원 이상으로 올라 키코 가입 기업은 지금까지도 후유증을 겪고 있다.
작년 12월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 이후 예측 기관과 금융회사는 ‘슈퍼 달러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직후에는 36조원에 달하는 영국계 자금 이탈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는 증권사도 있었다.
잇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 전망으로 1차 1200원, 2차 1250원 선에서 환헤지를 걸어 놓은 국내 수입 업체와 해외 투자 금융사가 의외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5일 원·달러 환율이 1110원대로 떨어진 점을 감안하면 1차 저지선에 비해선 달러당 90원, 2차 저지선을 기준으로 한다면 140원의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은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원·달러 환율이 최근처럼 떨어진다면 역키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환율 추가 하락 가능성 높아
중요한 건 앞으로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요인보다 추가 하락할 요인이 더 많아 보인다. 지난 2분기 미국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치보다 크게 낮게 나옴에 따라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은 낮아졌다. 연초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렸던 위안화 평가절하도 오는 10월부터 특별인출권(SDR)에 편입된 위안화가 준비통화로 발효되면 평가절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위안화와 원화 간 상관계수는 ‘0.8 이상’으로 높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를 도입한 일본 엔화와 유럽의 유로(영국계 포함) 자금도 국내 외 ?쳄恙?지속적으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경상수지 흑자가 1056억달러에 달한 것도 환율 상승이 어려운 이유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7%를 넘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회의에서 우리가 주도해 만들어 놓은 ‘경상수지 4%룰’에 걸려 있다. 올해도 1100억달러가량의 흑자가 예상된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불황형 흑자’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가장 확실한 원·달러 하락 요인을 갖고 있는 셈이다.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에도 한계가 있다. 작년 이후 19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원화 약세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다. 하지만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속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환율 조작’이라는 오해를 산다. 보호주의 물결도 더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국내 경제 여건을 왜곡시키는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대책이 시급하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이 중국에 권유한 ‘영구적 시장개입(PSI)을 우리도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권고했다. PSI란 외화가 들어오면 해외로 그대로 퍼내는 정책으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대책을 말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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