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슨 농담하는 거야, 당신이 죽으면 그냥 끝이야, 끝!”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물질주의자일 것이다. 인간은 물질인 실체와 정신인 의식의 집합체다. 죽음은 현실에서 이 두 가지의 연속성을 단절하는 혁명적 변화다. 과학이 물질을, 종교가 의식을 해결하려고 애쓰는 이유는 우리의 무지가 지식을 늘 능가하기 때문이다.
동양학을 기초로 한 풍수학은 죽음 이후 두려움의 세계에 대한 논의를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한다. 그 기초는 의식인 혼(魂)과 물질인 백(魄)이 우주 순수 에너지인 기(氣)에 의해 얽혀 혼백이 깃든 사람을 만든다. 살아있을 땐 혼이 폐에, 백은 간에 머물다가 죽어서 혼은 하늘로, 백은 정기(精氣)가 돼 사람의 골수, 뼈에 머문다는 것이 유교의 관점이다. 풍수학은 하늘로 간 의식과 뼈에 남은 물질에 대한 이름으로 죽음을 관조한다.
기업인 A씨는 또 물었다. “명당에 묻히면 자손에게 복이 됩니까?” 산천의 혈맥을 통과한 명당 자리에 묻힌 정기 서린 뼈는 엄마의 젖을 빨듯 숨을 쉬며 기운을 키운다. 커진 기운은 가장 비슷한 기운을 가진 후손에게 전달돼 좋든 싫든 영향을 미친다. 물질과 물질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풍수학의 관점인 동기감응론이다. 오래된 문중산소를 이장할 때 말(馬)만 한 사람 뼈들이 나오는 경우가 그 예다.
“그럼 나쁜 사람이 명당에 묻히면 어찌 됩니까?” 이 질문은 의식, 즉 혼에 관한 의문이요, 명당에 대한 도덕적 질타다. 어떤 현자는 “당신이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당신은 과학에서 벗어나는 셈이 된다”고 정중히 충고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앞서 간 현자들은 과감하고 정확하게 의식의 선함과 악함, 지혜와 무지에 대해 지적했다. 땅은 그 순수의식을 추구하고 인내하며 자신이 품을 대상을 기다린다. 땅도 마음이 있어 좋음과 싫음이 분명하다고 믿었다. 여기서 죽음에 관한 두 번째 시선인 소주길흉론이 탄생한다. “삼대가 적선을 해야 명당에 들어간다”는 말은 도덕, 윤리를 떠난 명당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풍수학에서 죽음은 없다. 혼은 살아 우주의 중심이 되고, 백은 살아 땅과 함께한다. 생명의 이어짐과 대물림의 반복은 백을 위한 과정이 아니라 혼을 위한 재탄생일 뿐이다. 의식, 영혼, 정신, 혼의 확장을 위한 재테크를 통해서만 복(福)이란 것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겁낼 것이 무엇일까.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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