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반대에도 사업 강행
구조적 악순환 후유증 터졌다
[ 김봉구 기자 ] ‘이화여대 사태’ 22일차, 재학생과 졸업생들에 이어 교수들마저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대학 교수비상대책위원회는 서명에 동참한 교수 115명의 명단을 공개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최 총장으로선 한층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실 최 총장의 외형적 성적표는 나쁘지 않았다. 이화여대는 이번 사태를 빚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을 비롯해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사업(프라임사업),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코어사업)을 연거푸 따냈다. 3개 사업으로 확보한 국고 지원이 연간 176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돈은 확실한 목적성을 띠고 있었다. 사업 평가지표는 정부 의중을 반영해 설계됐다. 사업을 따내려면 정부 시책을 좇아야 했다. 따라서 대학은 때로 무리수를 뒀다. 학내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화여대 사태는 이같은 과정의 축약판이었을 뿐이다.
대학들이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목을 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 대학교육혁신센터장(교육학과 교수)은 “등록금은 비싼데 대학은 돈이 없는 역설적 상황 때문”이라고 짚었다.
국내 대학의 기형적 재정구조가 근본 원인 중 하나다. 우선 학생 등록금 의존도가 너무 높다. 등록금 이외엔 별다른 수입원이 없다는 뜻이다. 다른 경로인 외부 기부금, 법인 전입금 모두 부족하다. 연구·개발(R&D) 펀딩이나 기술이전 등 산학협력 프로젝트 수입 비중도 아직 작다.
등록금을 올리기도 어렵다. 2013~2014년 미국 달러 구매력지수(PPP) 환산액 기준으로 한국 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8554달러(사립대 기준)로 미국에 이은 2위였다. 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정부의 등록금 동결 유도 정책을 논외로 해도 그렇다.
비싼 등록금과 가난한 대학의 ‘어울리지 않는 동행’인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 수준인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부담률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반상진 전북대 교육학과 교수는 “무엇보다도 파이 자체가 작다”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불과한 고등교육 예산부터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 교수는 OECD 평균인 1.2% 수준까지 끌어올리자고 제안했다.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정부 고등교육 예산을 GDP의 1%로 늘리겠다는 대선 공약은 매번 나오지만 여전히 실현은 요원한 상태다.
파이가 작은 데다 각종 세부 사업으로 쪼개고, 이마저도 대학끼리 경쟁을 붙여 선정된 곳에만 지원하는 방식의 후유증이 10년 넘게 쌓이면서 대학들의 뿌리 깊은 피로증을 불렀다. 때문에 대학가에선 이화여대 사태를 두고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서울 소재 사립대의 한 보직교수는 “기업이 응용이라면 대학의 역할은 기초 분야 ?있다. 그동안 이런 특성을 도외시한 채 밀어붙인 정부 사업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며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사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꼬집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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