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암호 57종만 사용…자연계선 없는 대장균 제작
특정 물질 생산 '세포공장' 가능
[ 박근태 기자 ] 과학자들이 직접 유전체(게놈)를 설계해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대장균을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3월 박테리아에서 불필요한 유전자를 잘라내 생존에 필수적인 473개 유전자만을 가진 ‘최소 세포’를 개발한 데 이어 산업적 활용도가 높은 인공 대장균을 만드는 방법이 나오면서 미생물을 직접 설계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조지 처치 미국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프랑스 파리국립고등광산학교 연구진은 생명체의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하는 유전암호(코돈) 64종 가운데 57종만을 사용해 자연계에 없는 새 대장균 게놈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최신호(18일자)에 발표했다. 그동안 효모와 대장균 등 미생물의 유전자 일부를 바꾸거나 유전암호 1~2개를 바꾸는 시도는 있었지만 유전 정보 전체를 사람이 원하는 대로 다시 ‘재코딩’한 사례는 처음이다.
세균이든 영장류이든 자연의 모든 생물은 DNA가 정해놓은 밑그림을 바탕으로 20가지 아미노산을 조립해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을 생산한다. 생명체는 DNA를 구성하는 A·T·G·C 등 네 종류 염기 중 3개를 하나의 묶음으로 하는 총 64개 유전암호를 조합해 생존에 필요한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을 만든다.
연구진은 대장균 게놈에서 유전암호 기능이 겹치는 6만2214곳을 찾아내고 같은 기능을 하는 유전암호로 바꿔치기했다. 연구진은 이런 방식으로 유전암호를 7개 덜 쓰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대장균 유전체를 설계했다. 김지현 연세대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대장균이 57종의 유전암호만으로 생존한다면 사용하지 않은 나머지 유전암호 7종을 이용해 대장균에 지금까지 자연계에 없었던 새로운 아미노산을 생산하는 능력을 부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렇게 새로 설계한 대장균을 ‘rEcoli-57’(사진)로 명명했다. 최인걸 고려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특정 유전암호만 사용하는 미생물을 제작하면 실험실 밖에서는 살지 못하고 특정 조건이 아니면 증식하지 않는 ‘세포 공장’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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