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탐험대·도토리박사 등 20년 간 매주 프로그램 출연
연간 180회 전국강연도 활발…"국민 과학 소양 높여야 강국"
[ 박근태 기자 ] 정호(靜湖) 김정흠 전 고려대 물리학과 명예교수(1927~2005·사진)만큼 많은 사람이 이름을 기억하는 과학자는 드물다. 그는 ‘새 박사’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 ‘아폴로 박사’로 불리던 고(故) 조경철 박사, 고 박동현 덕성여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일찍부터 한국의 과학 문화를 뿌리내린 1세대 과학자로 평가된다.
김 명예교수는 1927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고려대에서 강의를 시작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 1961년 로체스터대에서 원자핵물리 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고려대 물리학과로 돌아와 정년 퇴임하는 1992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많은 국민은 그를 물리학자보다 ‘국민 과학자’로 기억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신문과 잡지를 가리지 않고 과학에 관해 많은 글을 썼고, 많은 방송에 출연했다. 20년 가까이 매주 1~2회씩 텔레비전 과학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에게 과학을 알기 쉽고 재미나게 소개했다. 지금도 많은 40~50대들이 그가 출연한 ‘신비스런 과학’ ‘과학탐험대’ ‘도토리 박사’ 등 방송 코너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 1세대 원로 물리학자였지만 어린 학생들과의 만남도 꺼리지 않았다. 14년 가까이, 매주 네 번씩 EBS 라디오에 출연해 초등학생들에게 직접 질문을 받고 답을 해주는 코너를 맡았다.
전국의 초등학교 어머니회, 중·고등학교와 각 시·도 과학관에서 열리는 과학의 날 행사에서도 그는 단골손님이었다. 심광숙 고려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는 “당시 선생은 연평균 200자 원고지 5000~8000장에 이르는 글을 쓰고, 1년엔 180회씩 전국으로 강연을 다닐 정도로 열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대중을 만나서는 항상 과학기술 강국이 되려면 기초과학 중에서도 물리학의 발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동안 국내 대학입시 물리학과 지원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글과 강연, TV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지원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과학기술 발전을 꿰뚫어 보는 전문적 식견과 통찰력을 가진 ‘미래학자’이기도 했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한 일간지에 ‘서기 2000년 미리 가 본 미래의 세계’라는 칼럼을 연재했다. 당시 그가 예상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보는 이동형 TV나 현금이 필요 없는 전자통화, 영상통화와 문서작업을 함께하는 휴대용 영상전화기 등 상당수 기술이 이미 실용화됐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미국의 앞선 물리 교육을 지켜본 그는 당시 미국물리과학교육위원회(PSSC)가 만든 새로운 물리학 교육 방법을 국내로 가져왔다. 이공계나 인문계를 막론하고 현대인이라면 갖춰야 할 기본적인 과학 소양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또 과학 꿈나무들을 가르치는 현직 중·고교 물리교사들의 재교육을 강조했다.
평생 근검한 삶을 살았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사는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아들로 태어나 일제의 감시를 받고 따돌림당했던 그에게 독서는 유일한 낙이자 힘이었다. 그는 매년 사은회 자리나 다른 과학문화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후학들에게 “앞으로 사회에 나가 활동하게 되면 매달 수입의 10분의 1은 책을 구입하는 일에 사용하라”고 당부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