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사후적 고찰

입력 2016-08-30 18:16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콜럼버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대륙 발견을 폄하하자 그들에게 달걀을 세워보라고 했다. 사람들이 둥근 달걀을 세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할 때 콜럼버스는 달걀 밑동을 깨서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 사람들은 어떤 오류를 범했을까? 그들은 콜럼버스가 달걀을 세우는 방법을 보여주자 비로소 그것이 하찮고 너무 간단한 방법이라고 그 가치를 깎아내렸다. 이처럼 이미 발생한 과거의 사실에 대해 나중에 그 가치를 판단할 때는 그 사실 발생 전에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향을 ‘사후적 고찰의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법률 판단에서는 이러한 사후적 고찰로 인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특허사건에서 진보성을 판단할 때다. 예컨대 현재 우리에게 나사 머리는 -자 홈뿐만 아니라 +자 모양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나사 머리는 당연히 -자 홈이라고 알고 있던 시절에 최초로 그것을 +자 모양으로 바꾼 사람의 아이디어는 결코 폄하돼서는 안 된다.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할 사항을 챙기는 시점과 그로 인한 법적 책임을 묻는 시점 사이에는 사건 발생이라는 엄청난 결과가 이미 나타났기 때문에 사후적 고찰로 인한 오류를 범하기 쉽다. 어느 경영자가 신규 사업을 위해 대규모 투자를 했으나 결과적으로 크게 실패했다고 하자.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 사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사업추진 단계에서 그 위험성을 알기 어려웠다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의료과실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다. 치료 후 결과적으로 더 악화됐거나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도 치료 당시 의사로서 점검해야 할 사항을 빠짐없이 체크해 최선을 다했다면 법적 책임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의료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요즘 간과하기 쉬운 것은 판단 시점의 의료 수준으로 치료 당시의 과실 유무를 판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법원이 감정의에게 의료사고 감정을 요청하면 감정 시점의 의료기술을 기준으로 과거 치료의 잘잘못을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사후적 고찰은 편향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선 매우 가치가 있다. 우리는 수많은 정책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사건·사고 발생을 보고 있다. 성공한 것은 성공한 대로, 실패한 것은 실패한 대로 사후적으로라도 분석하고 검토해 고칠 것은 고치고 보강할 것은 보강해야 한다. 소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다시 소를 키우기는 어렵다.

이태종 < 서울서부지방법원장 kasil60@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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