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심기 특파원) “그들은 아주 분별있는 소비자들이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좋은 물건을 골라서 선택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익숙하고, 제품 구매전 사용기를 꼼꼼히 분석하고 인터넷으로 가격을 비교하는 밀레니얼 세대 얘기가 아니다. 적극적인 소비자로 변신하는 60세 이상 일본 고령인구들의 모습이다.
일본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은 사회'로 변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성인용 기저귀의 판매량은 유아용 기저귀를 넘어섰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5%를 넘어서면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출산률 하락세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동안 손주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돈을 쓸 대상이 사라지면서 자신을 위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의 히로미 야마구치 분석가는 “일본 고령인구의 연간 소비시장이 9000억 달러에 달한다”며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고령인구에 맞춘, ‘제이 컨셉트’로 불리는 새로운 전자제품 라인업을 선보였다. 이전에 9파운드, 약 4kg이나 나가는 진공청소기를 더 가볍게 만들었다. 일본 농촌지역에서 많은 인구들은 2층 주택에서 하고 있다. 노인들이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기 위해 기존의 진공청소기는 너무 무거웠다고 파나소닉은 설명했다. 냉장고와 세탁기의 높이와 크기도 줄였다. 일본 여성 노인 인구의 키는 152cm로 평균보다 5cm가 적다. 이들 대부분은 요통을 갖고 있다. 노인들이 보다 쉽게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세탁기에서 젖은 옷을 꺼낼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노인들의 구매력을 실감하는 백화점들도 초고령 사회에 맞게 스스로 변신하고 있다. 움직임이 느리고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노인들에 맞춰 에스컬레이터의 속도를 늦추고, 인터넷에 서툰 노인을 위해 유선 전화로 각종 식료품 주문을 받아 가정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노인을 겨냥한 기업들의 마케팅도 달라지고 있다.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을 가리키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 전략을 쓰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이들은 어려운 시절을 거쳐오면서 독립적인 사고와 도전정신을 갖고 있다. 사회를 재건하고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헌신했던 이들이 뒤늦게 자신들의 삶에 대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광고들도 노인 인구들의 이같은 욕구를 자극하고 있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당신이 비록 70대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은행계좌에 충분한 예금도 갖고 있다면 집에 가만히 있을 것인지,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도로를 달리면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설 것인지 선택하라는 식의 접근법”이라고 말했다.(끝)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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