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북핵 위협 제거되면 사드 필요없어"
'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구도 깰지 주목
[ 장진모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2일 오후 7박8일간의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3일)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4~5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및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 회의에 잇따라 참석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 4강 정상을 다 만난다. 북핵 공조와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갈등 해소, 경제협력 강화 등 난제를 풀어야 하는 박 대통령의 어깨는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이번 외교 성과에 따라 북핵 문제 등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엄중한 경제안보 상황에서 주요 관련국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국제공조를 재확인하는 아주 중요한 순방”이라고 말했다.
◆‘사드외교’ 돌파구 찾나
박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의 로시야 시보드냐 통신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북핵 위협이 제거되면 사드를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조건부 사드 배치론’으로 박 대통령이 직접 이같이 말한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에 러시아가 반대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문제의 본질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라며 “사드가 제3국을 목표로 할 이유도 없고 실익도 없으며 그렇게 할 어떤 의도나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EEF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이런 논리로 ‘사드 설득외교’에 나설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한·러 정상회담에서 북핵·사드 문제 외에도 극동지역 개발에 한국 기업이 대거 참여하는 등 양국 간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집중 논의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국가스공사 두산중공업 등 70개사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경협을 통해 한·러 관계를 강화하고 대북 압박 공조를 이끌어낸다는 구상이다.
EEF에 박 대통령과 함께 주빈으로 참석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러·일 정상회담을 한다. 극동개발 등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면서 냉랭했던 러·일 관계를 해소하는 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일 관계 진전은 한·러 관계, 미·러 관계 등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북아 정세에도 적잖은 변화를 불 ??수 있다.
◆‘한·미·일 vs 북·중·러’ 구도 변화
러시아에서 한·일, 러·일 정상회담이 열리는 날, 중국 항저우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을 한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최근 미·중 정상회담 사전 브리핑에서 “한반도 상황에 대한 공동 우려 등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가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라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로즈 부보좌관은 “북한이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개발을 진전시키는 한 우리와 동맹국을 지키기 위한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미·중 정상회담 결과는 뒤이어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도 적지 않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핵이 없다면 사드도 필요 없다”는 조건부 배치론을 제시하면서 시 주석과 ‘담판’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 한·미동맹 강화방안을 논의하고 아베 총리와는 북핵 공조를 논의한다. 러시아-중국-라오스로 이어지는 7박8일간 주요국 간의 숨가쁜 릴레이 정상회담은 사드로 촉발된 ‘한·미·일 대(對) 북·중·러’의 이른바 신냉전 구도를 바꾸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 한가운데에 박 대통령이 서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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