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백제의 미소,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곳

입력 2016-09-04 16:40  

충남 서산


[ 김명상 기자 ]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선과 수려한 자연, 청정한 농수산물, 백제문화의 향기를 간직한 서산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다. 수천년간 퇴적된 토양에서 양분을 흡수한 쌀은 품질 좋기로 유명하고, 가로림만 갯벌에서 나는 낙지는 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순교성지인 해미읍성을 비롯해 국내 최고의 마애불로 꼽히는 마애여래삼존상, 철새도래지 천수만도 서산에 있다. 서산에서 역사와 자연, 그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생명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해미읍성 - 교황도 다녀간 순교성지
서산 해미읍성은 원형이 잘 보존된 평성(平城)이자 천주교 성지로 잘 알려져 있다.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에 완성된 해미읍성은 낙안읍성(전남 순천), 고창읍성(전북 고창)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으로 꼽힌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1579년(선조 12) 10개월간 이곳에서 근무했다. 높이 5m, 둘레 1.8㎞의 성곽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돌에는 청주, 공주 ?고을의 이름이 쓰여 있는데 고을별로 구간을 나눠 맡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공사실명제와 비슷한 개념이다.

해미읍성은 1866년 병인박해 때 1000여명의 천주교 신자가 박해를 당한 순교성지이기도 하다. 읍성 남쪽의 진남루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목에는 옥사(감옥)가 있다. 당시 옥사는 충청도 각지에서 잡힌 천주교 신자로 가득했다. 옥사 앞엔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이 나뭇가지 끝에 철사를 매달고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고문하고 처형했다고 한다. 신자가 많아 처형하기 힘들자 나중에는 읍성 밖 해미천 옆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했다.

읍성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해미순교성지(haemi.or.kr)가 있다. 성지 내 해미성지교회의 뒤편은 ‘여숫골’로 불린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끊임없이 외쳤는데, 이것이 ‘여수머리’를 거쳐 여숫골이 됐다. 성지 광장 한쪽에는 해미 순교탑과 함께 둥근 모양으로 조성된 봉분이 있다. 이것이 천주교 무명 순교자들의 합장묘인 ‘여숫골 무명 생매장 순교자 묘’다.

이런 이유로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해미읍성에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집전했다. 세계 23개국 6000여명의 천주교 신자를 비롯해 국내 신자 등 2만3000여명이 운집했다.

마애여래삼존상 - 백제의 미소가 빛나다

해미읍성에서 약 9㎞ 떨어진 곳에 개심사(開心寺)가 있다. 백제 멸망 6년 전인 654년(의자왕 14) 창건된 천년고찰이다. 원래 이름은 개원사(開元寺)였으나, 고려 때인 1350년 ‘마음이 열리는 절’이라는 뜻을 담아 개심사로 바뀌었다. 내부에 대웅전(보물 제143호), 영산회괘불탱, 명부전, 신검당 등의 각종 문화재가 있으며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사찰 내부를 돌다 보면 독특한 형태의 기둥이 눈길을 끈다. 나무를 손질하지 않고 원래 모습 그대로 썼기 때문. 특히 범종각 지붕을 받치는 네 기둥은 굽은 나무를 손질하지 않고 갖다 쓴 듯한 모습이다. 자연을 살린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다.

개심사에서 차로 25분 정도 가면 용현자연휴양림이 나온다. 용현자연휴양림에서 용현계곡을 따라 서울 방향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있다. 백제 후기의 작품으로 국보 제84호로 지정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은 한국에서 발견된 마애불 중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큰 암벽 중앙에 석가여래입상이 있고 오른쪽에는 미륵반가사유상, 왼쪽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조각돼 있다. 석가여래입상은 둥근 얼굴에 눈을 크게 뜨고 두툼한 입술로 벙글벙글 웃는 모습이라 ‘백제의 미소’로 불린다.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가 달리 보여 신비롭고,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과 늘어진 주름에서 백제시대의 섬세한 조각술을 엿볼 수 있다. 서산시청 문화관광과 (041)660-2499

천수만 - 세계적인 철새도래지

충남 서산 천수만 일대는 매년 320여종 하루 최대 50여만마리의 철새가 모여드는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다. 천수만 일대는 북부 시베리아나 만주 등지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철새 이동 경로의 중앙지점에 있다.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내륙지방보다 온화하고, 주변에 대단위 농경지가 있어 추수 후 남겨진 곡식이 겨울 철새들의 먹이가 된다. 철새서식지로 적합한 조건을 두루 갖춘 천수만에서는 200여종에 가까운 많은 종류의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혹고니, 재두루미 등 많은 멸종위기종도 발견되고 있다.

철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서산버드랜드(seosanbirdland.kr)로 가보자. 철새를 주제로 다양한 볼거리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철새박물관, 4차원(4D)영상관, 둥지전망대, 탐방로 등으로 구성됐다. 천수만에 서식하는 각종 철새의 표본과 전시·영상 자료를 만날 수 있다. 4D영상관에서는 천수만과 새를 주제로 한 영상을 보여준다. 철새뿐만 아니라 숲, 갯벌, 논 등 다양한 자연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상설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여름방학과 겨울 철새 도래 시기에는 계절 특별프로그램을 선보인다. (041)664-7455

김명상 기자 terr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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