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 19년 만에 성인으로…"이례적"
[ 고재연 기자 ] “굶주림은 빵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굶주림은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며, 거부당하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큰 굶주림이자 커다란 빈곤일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빈자의 성녀’ 테레사 수녀(1910~1997)가 가톨릭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인 반열에 올랐다. 인도 콜카타에서 1997년 9월5일 선종한 지 19년 만이다. 복잡한 절차 때문에 성인이 되기까지 길게는 몇 세기가 걸린 다른 성인들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그의 삶이 현대 가톨릭에 던지는 울림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교황청은 4일(현지시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테레사 수녀의 시성식(諡聖式)을 열고 그를 ‘성녀 테레사’로 선포했다. 시성식에는 세계에서 약 10만명의 신자가 모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자와 상처받은 영혼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 교회가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말했다.
성녀 테레사는 지금은 마케도니아 수도지만 당시에는 오스만튀르크에 속하던 봬泯岳【?알바니아계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 1928년 아일랜드에서 수녀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인도로 넘어가 약 20년 동안 인도 학생들에게 지리 과목을 가르쳤다. 1950년 ‘사랑의 선교회’를 세워 극빈자, 한센병 환자, 매춘부, 사형수 등에게 손길을 건네고, 이들의 내면을 치유했다. 그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는 130여개국에서 빈민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성식을 기념해 이 선교회 소속 브라이언 콜로제이축 신부가 성녀 테레사의 삶과 업적, 말과 행동을 엮은 책 《먼저 먹이라》(학고재출판사)가 출간됐다. 책에 따르면 그의 삶은 가난한 사람들 안의 예수를 섬기고 사랑하는 과정이었다. 굶주린 이들을 먹였고, 한센병·에이즈 환자의 육신과 정신을 어루만졌다. 교도소를 찾아가 살인범이나 강간범을 만나 기도했다. 1985년 미국 뉴욕에 첫 번째 ‘에이즈 환자의 집’을 열었다. 당시 뉴욕 에이즈 환자 대부분이 동성애자나 마약 중독자였다.
성녀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굶주림을 채워주기 위해 빵이 되신 예수님은 한편으로는 저 헐벗은 사람이 되고, 저 외롭고 환영받지 못하는 노숙자가 되고, 저 한센병 환자나 술고래, 또는 마약 중독자나 매춘부가 되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주는 사랑을 통해 그분의 굶주림을 채워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979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는 가톨릭 교단을 넘어 20세기를 통틀어서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와 깊은 우정을 나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래서 그가 선종한 지 2년 만에 시복 절차를 시작, 2003년 복자로 추대했다. 복자품에 오르려면 ‘기적’을 증 灼瞞?하는데 199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해 위 종양을 치유받은 것으로 알려진 인도 여성 모니카 베르사의 사례가 기적으로 인정받았다. 이어 교황청은 작년 12월 다발성 뇌종양을 앓던 브라질 남성 마르실리우 안드리뉴가 2008년 테레사 수녀에게 기도한 뒤 완치된 것을 두 번째 기적으로 인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3월 그의 성인 추대를 공식 결정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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