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의 존재가 절실하다.”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김인식 감독이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발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완투수 기근에 시달리는 대표팀에 오승환은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
김 감독은 5일 기자회견에서 “투수 부문이 걱정이 많이 되는 포지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오승환이 국가에 봉사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의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 오승환은 지난해 야구계를 덮친 도박 스캔들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오승환이 검찰 수사 물망에 오를 때만 해도 야구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오승환은 조사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했다. 올해 1월 불법 해외원정도박(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다. KBO로부터 시즌 절반에 해당하는 72경기 출장정지 징계도 받았다. 다만 이 징계는 오승환이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로 진출하면서 유예됐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오승환에 대한 징계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는 문제에 대해서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규정 상 문제는 없다.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오 쪘?선발을 강행할 경우 KBO는 징계를 내린 선수에게 거꾸로 러브콜을 보내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정정당당하고 깨끗한 리그 확립’은 구본능 총재가 올해 신년사로 내건 목표였다. 이미 2차 승부조작 파문으로 야구인들의 스포츠정신마저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오승환이 합류하지 못해도 문제다. 투수가 없다. 에이스 류현진(LA 다저스)과 김광현(SK 와이번스)은 사실상 WBC 참가가 불가능하다. 구원투수들의 어깨가 무겁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최한 프리미어 12에 나섰던 구원투수 가운데 올해 리그에서 평균자책점 3점대 이하를 기록 중인 투수는 임창민(NC 다이노스)과 정우람(한화 이글스), 심창민(삼성 라이온즈) 3명에 불과하다. 넥센 히어로즈 마무리 김세현이 2.93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지만 ‘검증’이 되지 않았다. 기복이 심했던 전력도 있다. 오승환은 MLB에서도 꾸준히 ‘끝판왕’의 면모를 과시 중이다.
김 감독은 정면돌파를 택했다. 원로인 자신이 총대를 메고 아무도 거론할 수 없는 이름 오승환을 입에 담았다. ‘국가에 대한 봉사 의사를 보인다면 뽑겠다’며 단서도 달았다. 논란을 피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조건은 사실 오승환에 대한 배려에 가깝다. 봉사라는 명분을 만들어 놓았으니 손을 내밀어 줄 때 잡으라는 사인이다.
하지만 김 감독의 배려에 오승환이 난감해졌다. 역풍을 의식해 차출을 거부할 경우 자칫 ‘봉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비칠 수 있다. 때문에 오승환 측은 내심 이번 대회 준비 과정에 이름이 아예 거론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오승환의 매니지먼트 회사인 스포츠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오승환은 이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이 회사는 “오승환이 빅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던지고 있다”며 “선수의 난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감안해 달라”고 당부했다.
KBO는 오승환 선발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아직은 김 감독의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확산을 경계했다.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기술위원회의 논의를 거쳐야 하고 선수의 의지도 조율해야 한다”면서 “국민정서를 헤아리는 논의과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만 “오승환에 대한 징계 실행은 앞으로도 문제가 없다”며 대표팀 합류 여부과 관계없이 적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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