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반(反)젠더 페미니즘 전사 슐라플리

입력 2016-09-07 17:45   수정 2016-09-08 05:26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자칭 페미니스트였다. 그는 재임 시 1971년 남녀 평등 조항을 헌법에 명시하려고 했다. 1920년 미국이 여성에 투표권을 부여한 지 50년 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보수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수정안이 확정되면 여성을 보호하는 법제들이 오히려 사라지고 여성도 군대를 가야 하며 미국이 자랑하는 전통적 가정이 파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의 중심에 선 인물이 바로 엊그제 사망한 필리스 슐라플리다.

슐라플리는 도널드 트럼프도 정치 사상의 대모(代母)라고 부를 만큼 미국 보수주의의 아이콘이다. 슐라플리를 20세기 후반 미국사에서 손꼽는 중요 인물로 간주하는 정치학자들도 많다. ‘풀뿌리 보수주의자’를 자임하며 직접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의 행태에서 보수주의 정체성이 확립된 것이다.

1924년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중 사격수로도 일했으며 군수 공장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19세에 대학을 졸업할 만큼 우수했지만 원하는 하버드대 로스쿨은 가지 못했다. 여자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이에 대해 불만을 내비친 적이 騙駭? 변호사인 남편을 만난 뒤 여섯 아이를 낳아 키운 것도 특징이다.

슐라플리는 2차 세계대전 후 공산주의에 반대하면서 직접 정치에 뛰어들었다. 공화당 선거인단으로 나서기도 하고 지역선거에 뛰어들기도 했다. 정작 그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린 건 38세 때 쓴 《반향이 아닌 선택(Choice not an echo)》이란 책을 펴내면서다. 이 책은 당시 미국 온건주의자이며 중도주의 공화당원들을 맹렬하게 공격한 책이었다. 그들의 부패와 엉터리 글로벌리즘을 공격하면서 보수주의 운동의 강력한 결기를 보여줬다. 이 책은 300만부 이상 팔려 나갔다. 그는 페미니즘이란 용어를 싫어했다. 오히려 아내이자 어머니로 불리기를 바랐다.

슐라플리는 50대 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여 나갔다. 그가 법을 잘 모른다고 사람들이 비판하자 52세에 로스쿨에 들어갔으며 54세였던 1978년에 졸업했다. 그는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싫어했다. 말만 앞서는 엘리트주의자라는 것이다. 그가 엊그제 지병인 암으로 타계했다. 향년 92세였다. 지난 5월 트럼프 유세에도 나와 지지 연설을 했다. 그에게 자유는 자신의 계획을 만들고 그것을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전형적인 보수주의자이며 자유주의자였다. 명복을 빈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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