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중국의 '의도된 무례'의 함의

입력 2016-09-08 18:08  

항저우 G20 회의서 보인 중국 자세
보편 규범과 별개의 가치 추구 선언
왕조시대 조공제 되살리겠다는 것?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 yjlee@khu.ac.kr >



지난 4~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중국 처지에서는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지위에 걸맞게 세계 경제가 직면한 도전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선포식에 다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과거 어느 G20 정상회의보다 많은 개발도상국가 정상을 초청했다.

주최국인 중국은 ‘혁신적 성장패턴’을 중요한 의제로 설정했는데 이에 대해 관영 신화통신은 “글로벌 발전의 차원에서 항저우 정상회의는 각 측 공감대 및 행동을 응집한 ‘최대공약수’를 발굴함으로써 관건적 시기에 처한 글로벌 경제에 방향을 명시해주고 더 많은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중국의 역할을 치켜세웠다. 또 “첸탕강(항저우를 가로지르는 강) 만조에 돛을 띄웠다”며 “첸탕강에서 출발한 중국의 조류는 세계의 조류와 하나 되어 출렁이고 있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과연 중국의 물결이 세계의 물결과 하나가 되고 있을까. 중국의 물결이 세窩?물결에 녹아들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중국의 물결이 세계의 물결을 되레 물들이는 것은 아닐까. 이번 정상회의에 앞서 3일 열린 주요 20개국 비즈니스리더회의(B20)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3억 인구를 가진 대국이 현대화를 실현한 것은 인류사상 유일무이한 일이다. 중국의 발전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고 했다.

제2의 경제대국 중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역할을 증대하는 가운데 추구하는 ‘중국만의 길’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인권, 자유, 민주주의와 같은 보편적 규범과 별개의 중국적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은 아닌가. 이런 의문은 G20 정상회의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봐도 더욱 강해진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항저우에 도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관례인 전용기 앞문이 아니라 중간문을 통해 레드 카펫도 깔리지 않은 트랩을 내려와야 했다. 항의하는 미국 측에 중국 측 관리는 “여긴 중국 땅”이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다른 정상들은 모두 국제관례대로 레드 카펫이 깔린 앞문 트랩을 통해 내려왔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항저우를 꽃단장하기 위해 10조원의 돈을 쓰고 정상회의 기간에 시민들을 강제로 휴가 가게 한 주최 측이 이런 중대한 실수를 할 리 없다. 모욕을 주기 위해 ‘의도된 무례’라는 것이 세계 언론의 공통된 분석이다. 남중국해와 한반도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행동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 간 정상회담 직전에도 회담장에 몇 명의 미국인을 들여보내느냐를 두고 미국과 중국 관리들 사이에 험악한 말싸움이 벌어졌다고 한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고성까지 오갔다는 보도도 있었다. 관례상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제관례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중국이란 나라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들이다.

중국 TV로 중계된 개회식 장면 또한 ‘중국적 특색’이 가득했다. 개회식장에 도착한 외국 정상은 붉은 카펫을 따라 출입문까지 약 100m를 혼자서 걷는다. 문을 들어서면 시진핑이 있는 데까지 약 50m를 또 걸어야 한다. 시진핑은 손님이 들어오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한 발짝도 떼지 않고 기다린다. 손님이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말을 붙여도 대부분의 경우 옆에 통역조차 세우지 않은 시진핑은 미소만 지을 뿐 대답이 없다. 촬영이 끝나면 각국 정상은 멀리 서 있는 중국 의전관의 손짓에 따라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 마치 왕조시대 중국의 황제가 속국의 사절을 맞이하던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중국은 2천수백년 전의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지침이 사서(史書), 병략서(兵略書), 소설, 극희(劇戱)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대를 이어 전승되는 나라다. 이런 전략문화 속에서 사회화된 중국 지도자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과거 왕조시대의 조공제를 현대판으로 되살리려 들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나만의 지나친 기우일까.

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정치경제학 교수 yjlee@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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