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실망스러운 건 관료의 책임 회피와 무지다. “물류대란에 뭐 했느냐”는 지적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진해운에 화주와 운송 정보를 여러 번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해명만 되풀이했다. “시장에 부정적 시그널을 줄 수 있어 화주 정보 등을 요구하지 못했다”는 기획재정부 해명과 정면 배치된다. 임 위원장 설명이 맞다 해도, 어떻게든 협조를 얻어낸 뒤 법정관리를 결행하는 게 순서였을 것이다. 이외에도 우량자산 피인수, 채권단 추가 지원 여부 등 혼선과 의혹은 연속극 시리즈마냥 연쇄적이다.
임 위원장이 대우조선에 4조2000억원을 지원한 이유로 “국책은행 부실을 우려해서”라고 한 점도 방향 착오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대출이 14조원인데, 충당금은 1조원에 불과해 13조원의 손실이 나는 것을 견딜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렇게나 강조해 온 ‘대마불사에 휘둘리지 苛? 원칙 있는 구조조정’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대우조선 생사 판단에 국책은행 문제를 끌어들인 건 사안의 본질을 피해간 위험한 미봉책이다. 대우조선이 무너져 국책은행에 혈세를 쏟아붓는 더 큰 위기가 안 온다고 어떻게 장담하겠는가.
원론에서 맴도는 유일호 부총리 답변도 답답함을 더한다. 그는 “수천억원을 투입하고 국적선사 유지에 집착해야 하는지 고민 중”, “화주 피해와 해운산업은 분리해 봐야 한다”는 등 자문관 같은 태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 “지금이라도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언급한 대목도 취지는 십분 이해하지만 부적절하다. 그런 비난은 시민단체 등에 맡기고 내부자거래, 자산 빼돌리기 등의 위법이 있다면 꼼꼼히 밝혀내 처벌받게 하는 게 정부의 몫이다. 노골적 사재 출연 압박에 매달린 야당 의원들도 청문회를 맹탕으로 몰아갔다. 청문회는 ‘도의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최 전 회장과 ‘얼마 낼지 약속하라’는 의원들 간 흥정판이 되고 말았다.
정치권과 공기업의 유착은 허탈함마저 안겨 준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80여명 낙하산 요구를 다 받았다”고 시인했다. 분식회계가 전임 사장들의 연임과 무관치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 와중에 서별관회의 당사자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는 “정략적 정부 때리기가 문제”라며 망신주기 자제를 주문하고 나섰다. 공직자들의 용기를 북돋우려는 뜻이야 가상하지만 번지수가 틀렸다. “당당하다면 청문회에 나와 떳떳하게 밝히라”는 야당이 이번만큼은 맞다. 우리 사회의 지력과 시스템이 이다지도 허약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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