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심기 특파원) 1944년 8월14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로 쏟아져 나온 인파 중 해군과 간호사가 기쁨의 키스를 나누는 사진 한 장이 미국 잡지 ‘라이프(Life)’에 실렸다. 이 사진은 검정색 해군 유니폼과 하얀색 간호복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며 제2차 세계대전의 종료에 환호하는 미국인의 심경을 보여주는 상징이 됐다.
이 사진의 여주인공 그레타 짐머 프리드먼이 10일(현지시간) 폐렴으로 타계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향년 92세.
라이프誌가 이 사진을 1면에 실었을 때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사진을 찍은 알프레드 아이젠스타트 기자가 두 사람의 신분을 확인하지 않은 탓이다. 급기야 11명의 남성과 3명의 여성이 사진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프리드먼은 이 사진을 1960년대까지 보지 못하다가 아이젠스타트의 사진기록을 우연히 보다가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프리드먼은 라이프지에 연락해 본인이 사진의 주인공임을 알렸다.
당시 그는 21세로 간호사가 아닌 치위생사로 타임스퀘어 인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전쟁이 실제 끝났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타임스퀘어로 나갔다가 사진에 찍혔다. 사진 속 해군은 로드 아일랜드에 살던 조지 멘도사로 확인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단 한 번의 키스 후 헤어졌고, 서로 누군지도 모른 채 평생을 각자 살았다.
NYT는 사진의 로맨틱한 분위기와 달리 그 때 상황은 전혀 달랐다며 현재 기준으로는 오히려 성추행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프리드먼도 2012년 한 인터뷰에서 “당시 남성이 누구인지 몰랐다”며 “그가 나를 너무 세게 껴안아 키스를 하고 있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당시 상황은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덧붙였다.
1924년생인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독일의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자 부모와 함께 1939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왔다. 그의 부모는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과정에서 숨졌다. 프리드먼은 1956년 육군에서 과학자로 일하던 미샤 프리드먼과 결혼했으며 1988년 사별했다. /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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