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이전 4년-길 잃은 관료사회] "장·차관 꿈 버린지 오래됐다"…40대 초·중반 '에이스'까지 이탈

입력 2016-09-18 17:52  

(1) 몸도 마음도 떠나는 공무원

불편한 세종시 생활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로 매도 당하며 공직에 대한 애정 식어

자발적 퇴직 2배 이상 늘어…5급 이상 매년 1000명 떠나



[ 강경민 기자 ] 공무원 국외훈련(유학) 시험에 합격해 지난해 미국 유명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은 A서기관의 꿈은 서울 소재 대학 교수다. 그는 5급 공채시험(행정고시)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한 뒤 부처에서 ‘잘나가는’ 공무원으로 꼽혀 유학까지 다녀왔다.

사무관 때까지만 해도 장관의 꿈을 꿨다는 A서기관은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고 했다. 그는 “모든 공무원이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매도당하면서 공직사회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며 “세종시 이전도 이런 결심을 굳힌 계기가 됐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공직사회가 공무원들의 잇따른 이탈로 흔들리고 있다. 특히 정책 실무를 담당하며 공직사회의 허리 역할을 맡고 있는 행시 출신 4급(서기관)과 5급(사무관) 공무원의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분석이 た쨈? 행시는 1963년 제1회 시험이 시행된 이후 50여년간 장·차관을 배출하는 이른바 ‘핵심 엘리트 코스’였다. 하지만 이젠 분위기가 달라졌다. 행시 출신 공무원마저 공직을 등지고 민간 기업이나 학계로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18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자발적인 의사로 공직사회를 떠나 의원면직 처분을 받은 일반직 공무원은 2만7027명에 달했다.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공직을 그만두는 의원면직은 정년 및 사망에 따른 당연퇴직과 강제로 공직에서 배제되는 직권면직 및 징계퇴직과 구분된다. 2013년까지 연평균 2065명이던 의원면직 공무원은 2014년 6019명으로 급증했다. 당시는 2012년 말 시작된 세종시 이전이 본격화하던 시점이다. 그 해 4월엔 세월호 참사도 터졌다.

인사처는 이전까지는 별정직에 포함되던 우정직 공무원(집배원)이 2014년부터 일반직에 포함되면서 의원면직 공무원 수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때 공직을 떠난 우정직 공무원(1000여명)을 제외해도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자발적인 공무원의 퇴직이 증가했다.

5급 이상 공무원의 공직 이탈이 두드러졌다. 2013년까지 연평균 870명가량이던 고위공무원(1~2급) 및 3~5급 공무원의 자발적 퇴직은 2014년 1205명을 기록해 사상 처음 100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도 5급 이상 공무원의 자발적 퇴직은 1128명에 달했다.

인사처는 자발적으로 퇴직한 5급 이상 공무원 중 비(非)명예퇴직 공무원 숫자가 매년 늘어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명예퇴직은 20년 이상 공직생활을 해야 가능하다. 전체 의원면직 공무원 중 명예퇴직 공무원을 뺀 숫자는 재직기간이 20년 미만인 상태에서 퇴직한 공무원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행시 합격자 평균 연령이 만 26~27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40대 초·중반에 공직을 그만둔다는 뜻이다.

인사처가 매달 심사하는 퇴직공직자 재취업 심사에서도 이런 추세가 감지된다. 인사처 관계자는 “과거엔 재취업 심사 대상자의 대부분이 정년퇴직 공무원이었다”며 “최근 들어선 자발적으로 공직을 떠나 민간 분야로 옮기려는 40대 초·중반 서기관급에 대한 재취업 심사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밝혔다. 더욱이 내부 경쟁에서 뒤처진 공무원뿐 아니라 잘나가는 엘리트 공무원들마저 사표를 내고 공직을 떠나면서 공직사회 동요가 적지 않다는 것이 각 부처 공무원의 공통된 목소리다.

기획재정부에선 지난해 5월 미주개발은행(IDB) 연차총회 준비기획단 소속이던 박모 서기관이 퇴직해 두산그룹 상무로 취업했다. 올 5월엔 김모 국장이 삼성전자 IR그룹 상무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국제금융국 소속 박모 과장은 삼성경제연구소 임원으로 이직했다. 지난 7월 퇴직한 산업통상자원부의 단모 과장은 이달부터 SK텔레콤 상무로 출근한다. 이 밖에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경제부처에서도 민간기업뿐 아니라 각종 협회로 자리를 옮기는 이탈자가 늘고 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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