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 영토 개척' 원양선원
1960년부터 21년간 19억달러 송금…파독 광부가 보낸 돈보다 많아
한달에 한명 이상 사고로 사망…죽어서도 귀환못한 유해 305기
'원양선원 희생' 재조명
주스페인대사관 21일, 24일 마드리드·라스팔마스서 공연
정부, 2014년부터 유해귀환 지원
[ 강영연 기자 ] 1960년대 많은 한국인이 독일로 갔다. 남자는 광부, 여자는 간호사로 일했다. 번 돈을 고국으로 보냈다. 이들이 보낸 외화는 경제개발과 근대화에 큰 힘이 됐다. 1966년 또 다른 한국인들은 스페인과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 등으로 향했다. 물고기를 잡겠다고 무작정 태평양으로 나갔다. 일본에서 산 낡은 선박에 몸을 맡겼다. 한국 원양산업의 개척자들이었다. 이들이 고국으로 보낸 외화는 독일에서 온 돈보다 많았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조업을 하다가 죽어갔다. 생존을 위해 낯선 바다로 떠난 지 수십년, 죽어서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선원이 305명이나 된다. 이들은 지금도 스페인 피지 앙골라 등지에 묻혀 있다. 원양산업 진출 50년 만에 이들의 공적과 희생을 기리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이들의 유해를 국내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라스팔마스·피지 등에 한국선원 묘지
스페인 라스팔마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여행지로 꼽히는, 영국인과 북유럽인들이 선호하는 휴양지다. 하지만 이곳에는 한국 근대화 과정의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외화를 벌러 바다로 나갔다 돌아오지 못한 한국 원양선원들의 묘지다. 라스팔마스뿐 아니다. 원양선원들은 스페인 테네리페, 사모아와 피지, 남아메리카 수리남, 아프리카 앙골라와 세네갈에도 묻혀 있다.
원양선원들은 1960년대,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 1979년까지 원양어업으로 벌어들인 외화는 모두 19억9289만달러(약 2조2322억원)에 달한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1965년부터 10년간 한국으로 보낸 돈(1억153만달러)보다 훨씬 많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원양어업은 1달러가 귀하던 당시 한국 경제에 효자산업이었다.
희생도 컸다. 한 달에 한 명 이상 사고로 죽어갔다. 일본의 노후 선박을 구입해 썼기 때문에 설비가 부실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배에 탄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실무 경험도 부족했다. 선원들은 목숨을 걸고 조업했다. 아프리카 국가 영해를 침범했다가 경비정에 쫓기는 일도 잦았다. 죽음의 원인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원양선원들의 사망 원인은 대부분 ‘원인 미상, 안전사고 추정’이었다.
이들은 주검으로도 고향에 돌아올 수 없었다. 당시 대부분 국가가 시신을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옮길 수 있도록 한 나라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고아 등 가족이 없는 선원이 많았다. 어떤 이들은 가족이 운구 비용 등을 부담할 수 없어 포기했다. 죽은 선원들이 선단의 근거지나 항구 근처 묘지에 묻힌 이유다.
원양선원 18명 유해 ‘고국 품으로’
최근 이들의 희생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14년 외국에 묻힌 유골을 유가족이 원하면 국내로 이송하는 ‘원양선원 해외묘지관리 및 이장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모든 비용은 국가가 지원한다. 지난달 라스팔마스 공동묘지에 있던 한국 선원들의 유해 6기가 40여년 만에 가족 품에 안겼다. 지금까지 모두 18명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공연도 열린다. 주(駐)스페인 한국대사관은 한국 원양산업 진출 50주년을 맞아 21일과 24일 스페인 마드리드와 라스팔마스에서 기념 공연을 열기로 했다. 아프리카 모로코 서쪽에 있는 작은 섬 라스팔마스에 근거지를 뒀던 한국선단은 첫해(1966년)에만 252만달러어치 물고기를 수출했다. 이후 21년간 8억7000만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원양어업계 관계자는 “이번 음악회는 태평양 너머 대서양까지 원양어업의 영토를 확장한 이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 해운 등 바다와 관련한 산업이 버려지고 있는 지금, 이들의 희생은 한국 산업계에 각별한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덧붙였다.
이 행사를 주관하는 박희권 주스페인 대사는 “원양어업에 종사한 사람들은 예전 파독 광부와 간호사처럼 외화를 벌어오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공연이 이들의 희생과 노력을 알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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