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모 저자 · 김도형 서평
우리민족 전래의 홍익인간 사상을 한국경제 발전모델에 접목한 '홍익국부론'이 나왔다. 전인미답의 뉴노멀 신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압축 성장의 요인을 인적자본 축적과 그 정신적 기반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규명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한 시의적절한 저서이다.
1980년대 말 동서냉전의 와해와 동시에 사회주의 70년의 실험도 파국으로 끝났다. 지난 300년간 공업화 정보화 세계화를 통한 자본주의시스템의 진화에 의한 우위성과 역동성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개방개혁으로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접목함으로써 욱일승천을 시작한 중국을 보고 아시아 냉전구조 와해를 점치며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그 중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는 하나 없이 이른바 탐욕적 천민자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지난 4반세기 자본주의시스템의 액터들은 자생력을 상실한 채 99% 대 1%의 대결, 극심한 저성장과 디플레이션, 보호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면서 양차 대전 직후 이상으로 세계화의 그림자는 짙고 자본주의 정신은 퇴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압축 성장만큼이나 온갖 자본주의적 병폐가 일시에 나타나 한국경제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헤치고 있다. 여기에 네 가지 부조화가 내재되어 있음에도 이를 직시하지 못하고 제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맞이해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첫째, 과도한 국가 개입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요체인 기업은 이윤 극대화를 도모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국가 이익을 빙자한 정부가 여전히 구시대적인 사탕과 매를 과도하게 들어 보이고 그 결과 나타나는 각종 시장 실패는 민간 책임으로 전가하려는 무정견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세계물류대란 현장을 방치하는 가히 무정부 상태를 접하는 민생현장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중후장대형 업종에서 이를 다시 목격할까 두렵다. 정부가 탓하는 이들 업종의 과당 경쟁은 결국 기득권을 옹호하는 과잉 규제와 정부 실패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자립 자조 공조의 3자 조화가 일그러지고 있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의 요체도 분업과 협업에 있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그 정도가 심화되고 범위가 확산되어 양적 팽창과 질적 고도화가 가능했다. 그럼에도 사전 규제와 보호가 사후 규제와 구제를 앞서고 성장보다 분배가 우선시 되는 비전 정책 전략이 난무하고 있다. 자조와 공조 원칙에서 일탈하게 되면 정부주도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복지 포퓰리즘, 이를 불러오는 과잉민주주의, 이로 인한 정부부채 폭증은 결국 증세와 국채증발을 불러오고 장래를 대비한 민간은 쓰임새를 줄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셋째, 기업의 거버넌스가 무너지고 있다. 서구에서 이식된 우리 회사법은 분명히 주주총회, 이사회, 감사회를 통한 거버넌스와 함께 대리인인 경영자의 이윤극대화를 기본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주주자본주의가 기본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시스템으로서의 기업의 자본논리가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이해관계자간 대립을 끊임없이 조정하는 핵심종업원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이런 점에서 노조간부를 포함한 핵심 종업원 위상이 정립되지 않은 채 기업 거버넌스가 취약하고 오너 독단경영의 폐해에도 무력하다. 핵심 종업원은 기업내 교육훈련과 승진승급을 통한 고도 숙련노동력으로서 기업의 질적성장을 담보하는 기업내 인적자본인 셈이다. 이러한 종업원주권이 기업시스템의 근간을 이룰 때 비로소 주주주권과 공유 경제도 가능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디지털 경영에 접근할수록 핵심 종업원 주권을 통한 기업의 경쟁력 강화는 필수적이다.
넷째, 부가가치 창출 현장이 성장성, 민주성, 공평성을 점차 잃어 가고 있다. 부실 부문이 커지는데도 해고 자유가 없어 본업성장이 가로막히고, 국내 청년 실업에도 불구하고 노조와 협의 없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막무가내 이전하는가 하면 기획 연구 개발 등의 부서는 여전히 조립 생산 물류 유통현장과 수평적 연대가 아닌 수직관계를 고집하는 갑을의 비민주적 행태로 인해 부가가치 사슬이 망가지고 있다.
원화 환율 상승으로 얻은 이익은 내부 유보를 통한 연구개발, 품질 향상, 가격 인하로 소비자에 환원하기보다는 오로지 임금인상과 배당으로 자신들 몫을 챙기려는 노사 결탁을 도처에서 목격한다.
이렇게 오늘날 우리는 천부의 이치로부터의 일탈에서 비롯된 각종 부조화로 인해 고용 소득 소비의 악순환과 시장경제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이에 대한 효과적인 처방전을 제시하는 것이 학자의 역할일 것이다. 오랜 동안 우리 학계 발전을 주도해 온 저자 강정모 교수가 이러한 시대적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한국자본주의의 원형을 찾아 서구의 전통적인 인적자본론의 새 지평을 여는 장대한 실험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한국적 자본주의 원형을 찾으려는 시도는 가끔 있었다. 인본주의, 유교자본주의에다 최근 선비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서구자본주의의 이식과 변용 프로세스의 추적이라는 차원을 넘어 우리시스템의 원류에 접근하고 가능하다면 이를 보편화시켜보려는 일련의 시도였다. 그러나 이들 접근법은 아직은 계량경제사 혹은 제도경제학 등 실증과학의 방법론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강정모 교수는 이미 국내외적으로 공인된 한국의 경제발전 요인을 인적자본 축적에서 찾고 나아가 이를 가능하게 했던 가치체계로서 홍익인간사상에 주목한 것이다. 홍익인간은 고조선의 건국과 통치이념이었고 동시에 윤리 및 교육이념이었으며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世俗五戒)로 계승되고 조선시대 선비정신으로 표출되었다.
홍익인간은 원래 단군시대 국시인 “광명개천(光明開天),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에서 비롯됐다. 하늘의 뜻을 따라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함으로써 이땅에 하늘의 뜻을 실현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1948년 한국은 건국 당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적 역량을 극대화를 위해 ‘새로운 국민’을 필요로 했고 이를 위해 제시된 교육이념이 바로 홍익인간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인간은 민족 태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가치체계를 줄곧 지배해 온 정신적 지주였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인식이다.
이러한 기본인식에 기초한 홍익경제발전모형에서 저자는 인적자본은 전문화, 무역의 본질과 방향 및 경제성장의 속도를 결정하며 국부는 산업의 포트폴리오 및 기술과 산업의 융?복합에 의해 결정되며 발전정신은 경제발전의 필요조건이나 평등주의는 발전정신의 충분조건이라는 등 5개 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이들 명제는 앞으로 추가적 역사적 사례발굴과 계량분석 등을 통해 더욱 철저하게 검증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늘날 우리는 건국이념을 무시하고 고유의 정신적 가치체계마저 부정당하며 한민족의 자긍심을 스스로 짓밟는 일탈을 서슴치 않고 있다. 우리는 정직, 배려, 용서, 포용을 근간으로 압축성장을 이룩했다.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을 건강하게 지속해 가려면 구시대적 물질만능의 천민자본주의는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자본주의로 새판을 짜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우릴 것을 기대한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인문학, 경제학 전문가는 물론 기업인과 일반 독자들 특히 차세대 젊은이들이 본서를 통해 한국적자본주의 원형에 근접하고 이를 세계표준으로 업그레이드 해 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서평 : 김도형 한림대 겸임교수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한 경 스 탁 론 1 6 4 4 - 0 9 4 0]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