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기자 ] 국정감사 시즌이 돌아왔다. 여야 대치로 20대 국회 첫 국감이 파행을 겪고 있지만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속한 의원들은 경쟁적으로 보도자료를 쏟아내고 있다. 국감 시즌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인지도를 높이고 의정 실적을 쌓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원 개인이나 보좌진의 의욕이 지나쳐 ‘아니면 말고’ 식 한탕주의 폭로가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매년 국감 때마다 반복되는 ‘통신사 때리기’도 올해 어김없이 재현되고 있다.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거나 부풀려진 팩트를 인용해 통신사들이 수조원에 달하는 부당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몰아가는 게 단골 메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오세정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26일 이동통신사들이 내용연수(해당 자산이 수익 획득을 위해 사용될 것으로 기대되는 기간)가 지난 2·3세대(2·3G) 통신망에 대한 설비비를 기본료(가입자당 2000원 산정)로 징수하는 방법으로 2005년부터 작년까지 총 5조2842억원의 부당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전기통신설비의 내용연수를 8년으로 규정한 행정규칙을 인용, 설치한 지 8년이 지난 2·3G 통신망의 회계상 가치가 0원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통사들이 여전히 이 비용을 요금에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 의원이 내세운 논리에 회계 전문가들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내용연수는 일시에 발생한 투자비를 몇 년에 걸쳐 비용으로 인식할 것인지를 정한 회계 개념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내용연수 경과로 장부가치가 0원이 됐다고 해서 그 이후에는 초과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도 “회계상 비용 반영이 비용의 회수 여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며 “내용연수 기간 이후 수익을 모두 초과수익으로 간주하고 요금으로 회수하지 말라는 건 사업권을 반납하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각 기업은 정치권 공세에 맞대응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데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통신사 임원은 “의원실에서 낸 자료에 대해 감히 해명자료를 내는 게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사실 관계에 오류가 있는 의원들의 폭로성 자료는 온라인 매체에 여과없이 보도되고 또 빠른 속도로 퍼진다. 자료나 온라인 기사를 접한 일반 소비자가 기업에 막연한 반감을 품게 되는 부작용도 있다. 왜곡된 ‘반(反)기업정서’ 확산으로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은 추산이 불가능하다. 1인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권한에 걸맞은 막중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정호 IT과학부 기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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