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뜩 움츠러든 '김영란법' 첫날

입력 2016-09-28 18:15   수정 2016-09-29 00:30

대기업 '외부식사 금지령'…공무원 사이엔 '몸조심 10계명' 나돌아

한정식집 "줄잇는 예약 취소…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급식당 '썰렁' 축하 난 '반송'…구내식당·국밥집은 '북적'



[ 마지혜 / 황정환 / 김재후 / 고은빛 기자 ] “여름철 손실을 메워야 하는데 저녁 예약이 한 곳도 없으니 장사를 접어야 할 판이에요.”(서울 북창동 인근 일식당 주인)

“이러다가 다 해고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서울시청 인근 더플라자호텔 고급 식당 종업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서울 시내와 세종시 관가 등 식당가 분위기는 예상대로였다. 한정식과 일식, 복집 등 고급 식당은 직격탄을 맞았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 400만여명뿐 아니라 민간기업 관계자들도 잔뜩 움츠러들면서다. 직무관련성 개념에 대한 해석이 여전히 모호해 자칫 ‘시범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했다.

◆고급 식당가 ‘직격탄’

이날 낮 12시40분께 더플라자의 고급 일식집엔 손님이 5개팀밖에 없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평소에는 뛰어다宣?할 정도로 바쁜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며 “지배인을 포함한 경영진은 오전부터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레스토랑의 점심과 저녁 예약률은 이날 평소보다 30%나 감소했다.

서울 북창동 한국은행 인근에 있는 C복집 주인은 “어제부터 저녁 예약이 전무하다”며 “복 가격이 올라 음식값을 낮추는 건 도저히 불가능해 북어찜을 만들어 팔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세종시의 고급식당으로 꼽히는 고깃집 사장은 “평소엔 예약이 꽉 차는데 손님이 평상시의 절반 이하로 확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3만원 이하 ‘김영란 메뉴’를 선보인 고급식당들도 한산하긴 마찬가지였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 일식집 주인은 “점심과 저녁 예약이 한 건도 없다”며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했다.

꽃집 상황은 더 심각했다. 여의도에서 수년째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7)는 “전날 산업은행의 인사이동이 있었는데 동양란 선물 주문이 딱 한 건 있었다”며 “이마저도 배달갔더니 반송시키더라”고 하소연했다. 대전 유성구의 한 꽃집 주인은 “5만원 밑으로 뭐라도 맞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기다려보는 수밖에 답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기업인도 “당분간 몸조심”

기업인들까지 몸을 사리면서 충격이 더 크다는 게 식당 주인들의 얘기다. 대기업 상당수는 당분간 임원들에게 ‘외부 식사 금지령’을 내렸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은 아니지만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판단에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김영란법이 정착될 때까진 외부 식사를 모두 금지하기로 했다”며 “시행 초기에 오해받을 행동으로 구설에 오를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대관업무 담당자는 “이번 주부터 대관 일정을 아예 잡지 않았다”며 “내부적으로 당분간 아무 곳도 나가지 말고 부처 담당자와 전화로 통화하자고 입을 모았다”고 했다.

구내식당과 저렴한 음식점들은 반사이익을 누렸다. 북창동의 한 국밥집은 자리가 없어 줄이 길게 늘어섰다. 2개층을 사용하는 인기 음식점이긴 하지만 평소보다 줄이 길었다는 게 손님들의 설명이다. 이 식당의 국밥 한 그릇 가격은 6000원이다. 공무원 이모씨(39)는 “한동안은 구내식당이나 가격대가 낮은 음식점에서 끼니를 해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부세종청사 2동에 있는 구내식당은 이날 평소보다 많은 550인분의 점심을 준비했는데 584명이 다녀갔다. 5동에 있는 구내식당은 점심으로 평소 수요일보다 100인분가량 많은 850인분가량의 음식을 마련했다.

◆공무원들 ‘10계명’ 인기

이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일명 ’란파란치‘ 그물을 피하기 위한 ‘김영란법 10계명’이 나돌았다. △직무관련자의 기프티콘은 지체 없이 신고하라 △제자나 부하에게는 물 한잔도 얻어먹지 마라 △골프장 갈 때나 식사 후에 카풀을 하지 마라 등이다. 2만9000원짜리 김영란 세트를 먹은 뒤 같은 방향이어서 택시를 얻어탔다가는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등 구체적인 조언이 담겨 공무원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계湛岵?거래가 오가는 사람이 이성이라면 차라리 사귀어라’는 자조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연인 사이에는 김영란법의 식사 및 선물 가격 제한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혜/황정환/김재후/고은빛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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