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오른 정부발 구조조정] 철강·유화 설비 줄이라는 정부…"중국 기업만 이득 볼 것" 업계 반발

입력 2016-09-28 18:29   수정 2016-09-29 09:03

"외국사 보고서에만 의존, 산업 죽이는 구조조정"

유화 "글로벌 사업인데 국내 포화라고 줄이라니"

철강 "중국 저가제품 몰려오는데 누구 좋으라고… "



[ 도병욱 / 오형주 기자 ] 정부가 철강업계와 석유화학업계에 생산설비 축소를 주문했다. 철강 분야의 후판과 석유화학 분야의 테레프탈산(TPA) 등이 공급과잉 상태이므로 시급하게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철강업계와 석유화학업계는 나란히 “공급과잉 부문의 선제적 구조조정 방안에 공감한다”는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업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외국계 컨설팅 보고서에 의존해 산업을 살리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장관 앞 ‘침묵’…속으론 ‘부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8일 주요 석유화학사 최고경영자(CEO) 10명과 간담회를 하고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방안을 설명했다. 주 장관은 이 자리에서 “우리 석유화학산업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며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선제적인 사업재편을 통해 불필요한 군살을 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페트병 원료로 쓰이는 TPA와 장난감용 저가 플라스틱 소재 폴리스티렌(PS) 설비를 이른 시일 내에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TPA는 대표적 공급과잉 품목으로 지목됐다. 중국발(發) 공급과잉으로 국내 기업의 TPA 수출량은 2011년 362만t에서 지난해 231만t으로 급감했다. 국내 업체는 생산설비를 연 560만t 수준에서 연 400만t 수준으로 줄였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00만t 규모의 추가 설비 감축이 필요하다고 우회적으로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정부 발표는 베인앤컴퍼니가 한 컨설팅 결과를 기반으로 했다.

정부는 타이어 원료인 합성고무와 각종 파이프용 소재인 폴리염화비닐(PVC)도 공급과잉 품목으로 지목했다. 다만 이들 품목의 생산설비는 축소 대신 추가 증설 금지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들은 “공급과잉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특정 품목을 지정해 감산하라는 결론은 동의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석유화학사 CEO는 “TPA 생산설비를 줄이면 그 원료인 파라자일렌(PX) 수요도 줄어들고, 결국 PX 공급과잉 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화학산업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단순히 특정 제품 공급이 과잉이라는 이유로 설비를 줄이라고 하면 화학업계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비판했다. 다른 CEO는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국내 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목표?사업을 하는데, 국내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이유로 공급량을 줄이라는 정부 논리는 이해하기 힘들다”며 “후발주자인 중국이 이익을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스코·현대제철 당혹

철강산업 구조조정 방안의 핵심은 후판공장 폐쇄다. 철강산업 컨설팅을 벌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날 후판 및 강관 부문 공급이 과잉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선박이나 건설용 철강재로 쓰이는 두께 6㎜ 이상 철판인 후판의 공급과잉이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조선업계 ‘수주절벽’으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드는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기 때문에 기존 생산설비를 줄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각각 4개, 2개, 1개의 후판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업계는 포스코가 2개, 현대제철이 1개의 후판공장을 폐쇄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관 생산시설 역시 줄여야 한다는 게 정부의 결론이다.

철강업계는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들여 세운 후판 생산공장을 갑자기 폐쇄하라는 결론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대형 철강사 관계자는 “지난해 후판 수입량이 250만t에 달할 정도로 중국산 저가 제품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량을 더 줄이면 오히려 중국 철강사만 이득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BCG가 철강산업과 조선산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컨설팅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며 “정부도 기업 간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해야지, 특정 설비를 줄이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병욱/의滑?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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