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 구속영장 기각
검찰 "매우 유감"…재청구 검토 불구 동력 잃어
"5위그룹 경영 올스톱 시키고…" 비판도 부담
[ 박한신 기자 ]
법원이 29일 새벽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검찰이 ‘무리한 수사’ 논란과 함께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최종 목표’인 신 회장 구속에 실패하면서 재계 5위 그룹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조의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수사 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 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신 회장의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사안이 중대함에도 피의자의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해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신 회장의 영장을 재청구할 동력은 사실상 없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비자금 수사 ‘지지부진’
검찰은 지난 6월10일 롯데그룹에 대한 1차 압수수색 때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전체 인력의 4분의 1가량인 240여명을 동원했다. ‘역대 최대급’ 규모 수사의 시작이었다. 압수수색 대상에 신 회장 자택을 포함해 ‘최종 타깃’이 그룹 총수임을 숨기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달 “이번 수사의 핵심은 신 회장 등 오너 일가의 비리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검찰 수사가 생각만큼 잘 안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직후 “신 회장이 연 200억원 부외자금(비자금)을 계열사로부터 받았다”며 “며칠 내로 비자금 여부를 규명하겠다”고 했지만 돈의 성격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은 지금도 “확인 중”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계열사의 별건 비리 수사도 했지만 검찰이 청구한 현직 사장들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잇따라 기각됐다. 지난 7월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지난달엔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을 구속하는 데 실패했다. 두 사람 모두 검찰이 그룹 비리를 밝히기 위한 핵심 연결고리로 여긴 인물이지만 법원은 “혐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신 회장의 영장이 기각되자 “이보다 혐의가 가벼운 사건에서도 영장을 발부한 그동안의 재벌 수사 관행에 비춰볼 때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재벌 비리에 총수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반발했다.
검찰이 영장 재청구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앞서 기각된 두 계열사 대표의 구속영장도 재청구하지 못한 데다 비자금 조성 등 신 회장의 새로운 혐의를 밝혀내기가 사실상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롯데 수사가 다음주께 오너 일가와 일부 계열사 대표를 일괄적으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부실 수사’ 비판 직면할 듯
검찰은 롯데그룹 수사의 정점인 신 회장 수사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아들지 못했다. 신 회장을 지난 20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19시간가량 강도 높게 조사했지만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두고 긴 고민에 빠졌다. “영장을 청구할 정도로 혐의가 중하지 않다”(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구속 수사를 주장하는 수사팀과 불구속 기소를 원하는 대검찰청 수뇌부 간 의견이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검찰은 6일간의 장고 끝에 지난 26일 그동안 제기된 주요 혐의를 제외한 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이마저 기각되면서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이어 신 회장 신병 확보마저 실패하면서 이번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 5위 그룹인 롯데가 검찰의 전방위 수사로 상당한 경영 차질을 빚었다는 점도 검찰에는 부담이다. 롯데는 검찰 수사 시작 직후 그룹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 방안이던 호텔롯데 상장을 포기했다. 핵심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미국 액시올사 인수도 백지화했다. 그룹의 핵심 인사인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이 소환 조사를 앞두고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검찰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기업 수사를 깔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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