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이중섭 작가 그림전을 함께 볼 직원을 모집합니다.” 개천절 연휴 기간을 앞둔 지난달 말 점심 시간 무렵 하영구 전국은행연합회장이 직원들에게 ‘번개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특별한 점심 약속이 없거나 이중섭 작가 그림전을 보고 싶은 직원들은 부담 없이 참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일 제안이라 그리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몇몇 직원과 하 회장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 년의 신화’전을 찾았습니다.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전시회였습니다. 지난 6월부터 이달 초까지 열린 이 전시회에는 뉴욕 현대미술관에 있던 작품부터 개인 소장가들이 갖고 있던 애장품까지 200여점이 선보여졌습니다. ‘국민 화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국내 작가 개인전 중 역대 최다 관람객 수를 기록했고요.
은행연합회는 모든 시중은행과 특수은행, 지방은행, 외국은행 국내지점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은행들의 경영 개선과 현안 과제 해결을 위한 대정부 정책 제안, 공동 연구와 업무 개발을 맡고 있는 만큼 하 회장의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성장·저금리로 은행들의 수익성이 ?値?악화하고 있는 데다 올 들어서는 은행권 성과연봉제 도입이 최대 화두가 됐습니다. 지난달에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며 총파업까지 감행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고요.
금융노조는 다음달 2차 총파업을 예고한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구조조정, 청년 실업 등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파업은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고 말하며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 회장이 전시회 관람을 제안한 건 연일 야근과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직원들이 점심 시간을 틈타 잠시나마 여유를 누리길 바랐기 때문이라네요. 앞서 추석 명절 직전에도 하 회장은 “항상 고생이 많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이다”라는 말과 함께 손수 고른 와인을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씨티은행장을 지낸 하 회장은 은행장만 15년을 경험한 최장수 최고경영자(CEO)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은행장 시절부터 ‘일하기 즐겁고, 소통이 원활한 조직’을 추구했던 만큼 은행연합회 분위기도 빠르게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형식에 얽매인 문서 보고와 긴 회의 보다 요점만 공유하는 이메일이나 문자 메시지 등을 선호한다고 하네요. 이같은 은행연합회의 업무 환경이 은행권에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은행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기대해봅니다. (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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