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숨은 경제이야기] 산업단지가 필요한 이유는?

입력 2016-10-07 16:45   수정 2016-10-07 16:52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울산, 창원, 구미, 광양, 여수 등의 일련의 도시들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을 이끌고 있는 도시들이다. 지금은 이들 지역에 산업인프라, 공업인프라가 구축된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지만 사실 왜 이들 지역에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듯하다.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던 이들 지역에 세계적인 산업시설이 구축된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지역이 산업단지로 지정되어 육성되었기 때문이다. 산업단지란 공업용으로 개발된 산업시설이 구축된 지역을 통칭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산업단지라 부르는 지역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해당 부지조성의 목적에 따라 국가산업단지, 일반산업단지, 도시첨단산업단지, 농공단지 등으로 분류되어 저마다의 뚜렷한 조성 목적을 갖고 있다.

오늘날 이들 산업단지는 2015년 현재 전체 815개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 중 국가산업단지 40개, 일반산업단지 368개, 도시첨단산업단지 6개, 농공단지 401개 등이다. 지정면적으로 따지면 총 l,350㎢ 로 서울시 면적의 약 2.2배에 해당하여 국토면적의 0.7%에 불과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우리 경제에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 부가가치의 30% 가까이를 이들 산업단지에서 생산하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산업단지의 개념은 언제 누가 창안해 낸 것일까? 최초의 산업단지는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영국에서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896년 조성된 트래포드공업단지Traftord Park Estate가 바로 그것이다. 민간에 의해 맨체스터 지방에 조성된 이 단지는 1200에이커인 약4.8㎢ 규모의 대규모 임해단지로서 주로 전기·기계·건축·제분· 목재 업종이 입주하여 영국의 초기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당시 영국인들이 산업단지을 조성할 필요했던 것은 산업혁명 이후 생산 방식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산업형태는 전통적인 가내공업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이러한 가내공업의 작업 환경은 생활공간과 작업공간의 구분이 없는 것이 특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업량이 많아지거나 작업 환경 비중이 커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거주 환경이 매우 열악해질 뿐만 아니라 생활환경의 질적 수준도 매우 낮아지게 된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대규모 공장이 들어서면서부터는 이러한 상황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결국 작업환경 개선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확대되었다.

기업주 내지 공장주 역시 거주공간과 산업공간의 구분이 필요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집단화를 통해 공업 생산량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산업단지 내의 입주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산업단지는 토지 개발과 기반시설 설치 등을 대단위로 추진함으로써 기업의 투謎澍?절감에 유용한 수단이 된다. 도로, 전력, 용수 등의 기반시설을 포함해 폐수처리장과 같은 환경시설 등을 집단적으로 설치함으로써 입주기업에게 최적의 조업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민들의 노동환경 개선의 필요성과 기업주의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직장과 주거를 분리하여 공장을 집단화는 공업 단지가 본격적으로 형성되게 되었다.

오늘날의 산업단지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사전계획에 의해 정교하게 구획이 나누어지고 계획적으로 관리되는 산업단지의 등장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이다. 특히 1950-1970년에 걸쳐 산업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되면서 선진국에서는 산업단지 개발이 본격화되어 공장입지 의 주요 방식으로 등장하게 된다. 1970년대 이후에는 단순한 생산 중심의 공업단지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형태의 산업단지가 개발되었다 영국의 캠브리지과학단지Cambridge Science Park를 시작으로 미국에서는 대학교가 주도하는 연구단지research park 혹은 공업·상업·업무 기능이 결합된 업무단지 business park의 개발이 활성화되면서 특성화된 산업단지 조성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렇다면 산업단지의 개념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일까? 우리나라에서 산업단지는 1962년에 시작된 경제개발계획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에 조성되기 시작한 한국수줄산업공단인 오늘날의 서울디지털단지가 최초의 공업단지라 할 수 있다. 그 이전인 1950년대까지는 해방과 전쟁으로 인해 체계화된 산업입지정책이 없었고 따라서 기업이 자유로이 입지를 선정하는 개별입지 위주로 공장용지가 개발되었다. 하지만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업활동 촉진을 위해 정부주도로 관련 법령이 제정되고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는 등 본격적인 산업입지정책이 추진되었다. 당시 대규모 공업단지조성이 필요하게 된 가장 큰 배경으로는 도심지 내부에서는 집적화된 공장용지를 확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산업단지는 입지여건이 좋지 않은 대도시권 밖의 지역에 대규모 공업입지를 계획적으로 공급하여 기업의 산업용지 확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빠른 시간 내에 집적화된 제조업 발전을 견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에도 정부주도의 경제성장정책이 추진되면서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산업단지는 이후 경제개발 단계에 맞춰 산업입지정책을 시의 적절하게 변화시켜 가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오늘날 산업단지는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지역균등발전 측면에서도 핵심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산업단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는 지역일수록 해당 도시나 지역의 성장세가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대규모 국가산업단지가 입지하고 있는 울산 울산미포, 온산, 전남여수, 광양, 경북구미, 경남창원, 그리고 16개 시·도 중 가장 많은 수 130개의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충남지역의 경우 1인당 생산액이 전국평균을 크게 상회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지역의 소득수준과도 직결된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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