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이 왜 미르재단 설립을 위해 모금 활동에 나섰는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 퍼주기 사업에 나섰던 것의 연장선이다. 미소금융재단이나 청년희망재단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렇다. 세월호 모금에도 전경련이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던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정경유착의 모금 대리인 역할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들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돈의 고리 역할을 시킨 자는 모두가 정치권이다.
전경련의 전신인 한국경제인연합회가 1961년 설립될 당시 내세운 슬로건은 “경제계가 공동의 힘으로 정치와 관권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 역량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정치자금 규제법과 같은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욕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경제 발전 60년 동안 전경련은 이런 목표를 잃은 채 오히려 정치의 시녀가 돼 왔다. 아니 정치권이 재계를 기어이 시녀로 만들었다. 회원사들은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는 등 각종 불이익에 시달려 왔다. 출자나 의결권 제한 등 수많은 규제는 전경련을 옥죄었다. 경제가 순항할 때나 위기상황일 때나 모든 경제문제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전경련은 기업들의 권익 신장은커녕 정치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급급했다. 정경유착의 고리가 필요했던 것은 오히려 정치권력이었다.
좌파나, 반(反)시장주의 단체들은 기업 비판을 무기 삼아 개별기업에서 거액의 활동자금을 모금해 왔다. 좌성향의 복지단체들조차 기업을 겁주면서 돈을 모금해 왔다. 이들의 홈페이지에는 돈을 낸 기업들의 부끄러운 명단이 기록돼 있거나 숨겨져 있다. 독립적으로 돈을 모금하는 데 실패하는 단체들은 정치권을 통하는 등 갖은 경로를 통해 전경련에 반(半)강제적 후원금을 요구해 왔다. 정치권력은 한발 더 나가 전경련을 아예 자신의 호주머니처럼 생각해 왔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은 엊그제 임금 인상과 관련한 자민당과의 간담회에서 “경제계만 부담을 질 게 아니라 정치도 리스크를 분담해야 한다”며 인상 거부 의향을 분명히 나타냈다. 이런 일본 게이단렌이 부럽지 않은가. 게이단렌은 이미 2014년 9월부터 정당과 의원들의 정치성향을 가려서 정치헌금을 내고 있을 정도다. 미국 상공회의소도 선거자금을 후원할 때는 철저히 의원의 친기업적 투표 성향을 토대로 결정한다. 전경련은 분명히 압력단체요 이익단체다. 정치권이 이 단체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는 없다.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을 만들든 말든 그것조차 전경련 회원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 전경련을 그냥 내버려 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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