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주의' 흔들려선 안돼
실패했다고 손가락질 하면 도전·혁신은 설 자리 없다
실패·시행착오 없었다면 TV·반도체 1위도 없었다
지금은 박수 보내줄 때
차병석 산업부장 chabs@hankyung.com
[ 차병석 기자 ]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실패’를 놓고 한국 사회가 소란스럽다. 실패를 용인하는 데 인색한 고질병이 또다시 도졌다. 삼성이 갤럭시노트7을 리콜하고 단종까지 하자 일부 정치인은 ‘삼성 때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의 적폐가 드디어 터진 것이라며 해법으로 경제민주화를 들먹이는 정치인의 처신은 오히려 상황을 우습게 만들 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불운을 ‘때는 이 때다’는 식의 정치 플레이에 이용해선 곤란하다.
갤럭시노트7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조급증이라는 건 삼성도 인정한다. 삼성의 조직문화, 의사결정 및 지배구조까지 도마에 올라 있지만 혁신적 제품 개발을 너무 서둘다 실수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삼성은 갤럭시노트7에 홍채 인식과 방수 등 혁신 기술과 기능을 잔뜩 집어넣었다. 그러려면 배터리 용량을 최대한 키워야 했다.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용량은 3500㎃h다. 직전 모델인 갤럭시노트5(3000㎃h)보다 17% 크다. 비슷한 크기의 애플 아이폰7플러스의 배터리 용량은 2900㎃h다. 배터리 용량을 확 키운 스마트폰을 하루라도 빨리 내놓으려고 시간을 다투다 문제가 터졌다는 게 중론이다.
삼성은 왜 이리 조급했을까. 애플을 따라잡아 명실상부한 세계 1등이 되기 위해서였다.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판매량으로는 삼성이 1등이고 애플이 2등이다. 하지만 이익 규모는 애플이 1등이고 삼성이 2등이다. 지난해 애플은 553억2100만달러(약 60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삼성은 애플의 6분의 1인 10조1400억원에 그쳤다. 브랜드 가치도 애플은 지난 4년 연속 글로벌 1위다. 삼성은 7위다. 애플을 추월하기 위한 극한 도전이 삼성을 조급하게 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쟁사를 앞서려고 혁신에 도전하다가 좌절했다는 얘기다. 나태했거나 대충 하다가 실패한 건 아니라고 믿는다.
성공만 하는 기업은 없다. 그런 기업은 역설적으로 망하기 쉽다. 실패 없이는 혁신도 이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회장은 올해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서한에서 “아마존은 세상에서 실패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의 아이콘인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도 “실패는 하나의 옵션이다. 만약 무언가 실패하고 있지 않다면 충분히 혁신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기업의 ‘성공 방정식’을 꿰뚫는 금언(金言)들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이 “갤럭시노트7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가 오히려 삼성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의 실패를 성공 과정으로 보고 북돋아 주지 않으면 도전과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한 사람과 기업을 패배자로 낙인 찍는 순간 그 기업과 나라는 성공을 꿈꿀 수 없다. 지금까지 삼성의 수많은 성공신화도 숱한 도전과 실패의 결과물이었다.
삼성이 1983년 반도체 시장에 진출한 뒤 흑자를 낸 건 1988년부터다. 그 사이 무수한 실패와 좌절이 있었던 건 물론이다. 소니가 평정하고 있던 TV시장에서 삼성이 세계 1위를 차지할 때까지 피할 수 없었던 것도 수백번의 실패와 시행착오였다. 삼성의 첫 스마트폰인 옴니아폰의 실패가 없었다면 오늘날 ‘갤럭시 신화’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임직원 수백명은 갤럭시노트7의 결함 원인을 밑바닥까지 밝히느라 경기 수원 본사 디지털캠퍼스에서 이를 악물고 밤을 새우고 있다. 그들이 지금 흘리는 눈물과 땀이 새로운 성공의 밑거름이 될 것이란 점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에게 손가락질이 아니라 박수를 보내줘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지금도 좁은 연구실에서, 차가운 생산현장에서, 광활한 글로벌 시장에서 세계 1등을 향해 도전하고 혁신하며, 또 실패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차병석 산업부장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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