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안 돼 대학원 들어간 아들 뒷바라지하고 딸 시집 보내야 한다. 요양병원에 모신 어머니도 보살펴야 한다. 회사에선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늘어나는 약봉지에 우울증까지 겹쳤다. 내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는데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노후준비는 생각도 못 한다.”
대한민국 50대의 슬픈 자화상이다. 한경비즈니스가 5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우울하다. 이전엔 자녀가 대학 졸업하고 취직해 부모를 돕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지만, 지금은 50대가 노부모뿐만 아니라 20~30대 자녀까지 부양하는 상황이 됐다.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효도 받기를 포기한 처음 세대를 뜻하는 ‘막처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엊그제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고서도 50대를 삶의 만족도 최하위 세대로 진단했다.
50대의 가장 큰 불안은 경제, 그 다음은 노후와 건강이다. 자산 규모가 1억원도 안 된다고 답한 사람이 27.7%, 1억~3억원이 27.5%, 3억~5억원이 21%다. 10명 중 7명이 집 한 채밖에 없다. 그중 1억 이상 빚을 진 사람이 17%나 된다. 월평균 소득은 대부분 200만~400만원이다. 돈 들어갈 곳은 여전히 많다. 생활비로 54.5%, 자녀교육비 ?26.6%, 대출상환으로 14.5%를 쓴다. 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5세 이상 자녀에게 쓰는 돈도 월평균 73만7000원이다. 새끼 먹이로 제 살까지 내주는 염낭거미와 다름없다. 50대의 의식구조는 아직도 ‘자녀가 취업하고 결혼할 때까지 부양해야 한다’는 게 대세다.
이러니 자신을 위한 노후 준비는 꿈도 못 꾼다. 은퇴설계 전문가들이 50대 초반 이후 10년간을 ‘노후 준비의 골든 타임’으로 꼽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다는 사람은 열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 고용 불안은 더하다. 민간 기업에선 50대 안팎부터 명예·희망퇴직 압력을 받는다. 정년이 연장돼도 임금피크제로 뒷방 신세를 지는 등 나이 차별에 직면한다.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질 낮은 일을 맡아도 일자리 뺏는다는 공격을 받는다. 정부 지원은 젊은 층과 노년층에 치우쳐 있다.
생각해보면 50대야말로 우리가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100세 시대의 ‘진정한 중년’이다. 서양 사회학자들이 ‘세 번째 인생’ ‘제2의 성인기’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딴판이다. 일본의 50대가 겪었듯이 우리도 서서히 ‘삶은 개구리’가 돼가는 것일까. 그래서 ‘아버지의 술잔엔 눈물이 절반’이라 했던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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