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계부채 급증에 우려가 많다.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구분한다면 한 가지는 가계부채의 건전성이 악화돼 금융시스템이나 부동산시장이 교란되는 데 대한 우려다. 다른 하나는 차입자인 가계가 가계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원리금 부담으로 소비와 후생이 악화될 상황에 대한 우려다. 두 가지 걱정 모두 결국 가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것이겠으나 가계부채 대응 측면에서는 매우 다른 접근이 이뤄질 것이다.
전자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계대출의 건전성을 높여 신용위험을 줄이는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단기 변동금리 대출을 장기 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해 유동성 위험을 축소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정부는 최근 이런 관점에서 가계대출을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가계부채의 문제를 ‘금융’ 문제로만 인식하는 사고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소비 주체인 가계의 부채는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이전하기 위해서 발생한다. 즉 가계 차입은 미래의 소득, 곧 상환 능력을 전제한다. 하지만 과연 최근 가계부채 증가가 이를 전제하고 있는가? 만약 가계가 미래의 소득 증가를 기대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부채를 증가시킨다면 가계부채는 소득 평탄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소득 계층별로 상이한 영향을 주고 있다면 가계부채는 장기적으로 소득분배 구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정욱 서울대 교수와 필자의 연구는 이런 관점에서 가계부채 수준과 소득계층 이동 가능성의 관계를 분석했다. 코리아크레딧뷰로(KCB)가 제공한 차입자 자료를 이용해 이들을 10분위 소득계층으로 구분한 뒤 분위별로 가계부채 수준과 소득계층 이동 가능성 간의 관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하위소득 계층일수록 상대적으로 비은행권 대출의 의존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부채비율도 하위 계층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상위소득 계층은 비은행 금융부채를 많이 사용할수록 다음해 소득 분위가 하락할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커지는 것을 발견했다. 본 연구는 누적된 가계부채가 가계부채의 질을 저하해 가계후생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제시했다.
본 연구는 가계부채가 단순히 금융 문제가 아니라 실물 경제 및 국민 후생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본 연구 결과는 가계에 대한 자금 공급 증가가 오히려 장기적인 가계의 후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 또한 시사한다. 결국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계부채 증가를 유발하는 근원적인 요인, 곧 가계의 고용불안이나 부동산 가격 상승 같은 실물경제 문제 해결이 우선돼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승연 < 명지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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