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연미 맥도날드 상무
"왜 우리 딸 집에 안 보내냐"…어머니가 회사에 전화할 정도
입사 초엔 누구나 위기, 그 시간 견디면 왕관 얻을 것
[ 공태윤 기자 ] 1993년 한국맥도날드에 입사했다. 23년 전이다. 1990년대 초 외국계 기업은 꿈의 직장이었다. 주 5일 근무에 연간 휴가만 15일이었다. 미국 맥도날드 햄버거대학에서 점장교육을 받는 기회도 줬다. 당시 10년짜리 미국 비자를 인터뷰 없이 발급해 주는 특급 대우도 받았다. 무엇보다 햄버거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매력에 원서를 냈다.
꿈꾸던 맥도날드에 입사했지만 하루하루가 쉽지 않았다. 식품영양학과 전공자로 매장 관리자를 맡았기에 매장에서 근무하는 ‘크루(매장 현장근로자)’를 관리하는 업무를 할 줄 알았다. 첫날부터 주어진 일은 화장실과 매장 바닥 청소. 온종일 청소하고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됐다. 날마다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상상을 했다. 퇴근길에 “내일은 그만둘 거야”라는 말을 되뇌었지만, 집에 오면 “최소한 1년은 버텨라”는 어머니의 말에 참고 기다렸다.
그것이 내 직장생활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렇게 3개월을 버텨내자 거짓말처럼 회사 출근이 즐거워졌다. 매장 아르바이트생들과 쉬는 시간엔 수다를 떨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친해졌다. 그때 깨달은 것이 ‘직장 내 사람들과 관계의 중요성’이다.
승진 때마다 필기시험을 봤다. 수백개에 달하는 햄버거 제조법을 외웠다. 매장관리자 시절 “연미씨 밥먹고 시험볼거니까 준비해요”라는 사수의 가르침이 나를 성장시켰다. 처음엔 왜 외우라고 하는지 몰랐지만 그때 외운 것이 고객이 불만을 제기할 때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됐다.
학벌도 스펙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입사 3년 만에 점장이 됐다. 학교나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오로지 일로 평가하는 회사였기에 가능했다. 점장 때는 교대근무를 나가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자 어머니가 “왜 딸을 집에 안 보내느냐”고 회사에 전화할 정도였다. 퇴근 시간도 잊을 정도로 일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20대 젊은이들이 직업 선택을 앞두고 고민한다면 “재미있는 일을 택하라”고 말한다.
일이 재미있으면 자연스레 업무성과가 나고 일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데 시간을 쏟았으면 한다. 인턴이 어렵다고 말하지 말고 삼성에 입사하고 싶다면 집 가까운 삼성전자 대리점에 가서 몸으로 부딪쳐 조직문화를 경험하고 그 회사 브랜드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
외국계 기업에서 영어는 일을 위한 수단이다. 임원이 된 이후 10년간 상사는 모두 호주인이었다. 새벽 영어공부를 위해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도록 알람을 맞추고 그때 못 일어날 것을 대비해 5시에 한번 더 울리도록 맞췄다. 6시에 출근 ?두 시간 반 동안 영어를 공부한다. 지금도 매일 오전 4시30분, 5시, 6시, 8시30분에 휴대폰 알람이 울리는 이유다. 40대 중반을 넘겨 단어를 외우면 금세 잊어버리지만 외우고 또 외운다. 어느 일터나 입사 초 위기가 오고 이직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버틴 자만이 나중에 왕관을 얻게 될 것이다.
◆한연미 상무는
한국맥도날드에서 여러 개의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입사 3년 만에 점장이 된 뒤 1년 만에 지역관리자로 진급했다. 아직도 한국맥도날드 ‘최단기·최연소 점장’ 기록으로 남아 있다. 매장 매니저 출신 첫 여성 임원 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입사 13년 만에 영업이사가 된 한 상무는 임원생활만 10년째다. 한국맥도날드 영업과 매장을 총괄하고 있다.
정리=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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