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인력 2년 앞당겨 2018년까지 감축
일단 몸집 줄여 수주절벽 버티기에 초점
"대우조선 뚜렷한 방안 없어…핵심 빠져"
[ 이태명/안대규 기자 ]
정부가 31일 내놓은 조선업 경쟁력 강화 방안은 크게 세 갈래다. 초유의 경영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2018년까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조선 3사의 인력과 설비를 대폭 줄이고 2020년까지 군함 등 선박을 250척 이상 발주해 ‘수주절벽’을 해소해 나간다는 내용을 담았다.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와 선박 수리·개조 등 신(新)사업 분야를 키운다는 방안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핵심이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 3~5년 뒤 한국 조선업의 청사진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지 않아서다. 기존 대책과 중복된 내용이 많고, 산업은행 지원 없이는 독자 생존이 어려운 대우조선의 뚜렷한 처리 방안도 없다. 이 때문에 조선업계와 학계에선 ‘재탕 정책’ ‘부실 정책’이란 비판이 나온다.
◆“몸집 줄여서 버틴다”
정부 발표를 보면 앞으로 조선경기는 매우 어두울 것으로 관측됐다. 세계적인 수주절벽으로 2020년까지 업황이 개선되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영국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2016~2020년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가능한 물량은 직전 5년(2011~2015년) 수주 물량의 절반에 그칠 전망이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의뢰를 받은 맥킨지컨설팅 전망치보다는 다소 낫지만 큰 차이는 없다.
맥킨지컨설팅은 2016~2020년 수주량이 직전 5년의 34%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정부는 수주절벽 탓에 대형 조선 3사의 2018~2020년 연평균 매출이 2011~2015년의 5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제시한 해법은 ‘일단 줄이라’는 것이다. 2018년까지 조선 3사의 설비(도크)를 31개에서 24개로, 인력을 6만2000명에서 4만2000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 6월 대책에서 2020년까지 설비와 인력 감축을 추진하기로 한 것을 2년 앞당겼다.
최대 관심사던 대우조선도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해양플랜트 사업을 축소하고 14개 자회사를 매각하는 등 몸집을 줄여 최대한 버틴다는 계획이다. 2018년까지 인력 5500명을 줄일 방침이다.
◆군함 등 정부 일감 몰아주기
정부는 대우조선 등 위기의 조선업을 구하기 위해 공공선박 발주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250척 이상, 금액으로 11조2000억원어치 이상을 발주할 방침이다. 자국 선박이 전체 건조량의 80%인 일본, 69%인 중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한국 조선사의 자국 선박 수주량(21%)을 인위적으로 늘 ?渼募?것이다.
호위함·고속상륙정 등 군함과 경비정 23척, 관공선 40척 등을 발주하기로 했다. 또 선박펀드 규모를 당초 1조3000억원에서 2조6000억원으로 두 배로 늘려 대형 선박과 여객선 등 75척의 일감이 생기도록 했다. 중소 조선사를 위해선 연안 화물선 등 115척의 발주 물량을 확보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선 공공선박 발주를 늘려 위기 타개를 지원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조선·플랜트 건조 중심인 산업 구조를 선박 수리·개조, 플랜트 엔지니어링 등 서비스산업으로 바꿔나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맹탕’ ‘재탕대책’ 지적
정부 발표가 나오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우조선 처리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이날 “단 한 번도 대우조선을 정리하고 ‘2강체제’(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로 가자는 논의를 한 적이 없다”며 “대우조선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내년 이후 대우조선이 만기 도래 채권 등을 고려할 때 조(兆) 단위의 유동성 부족이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많은데, 이에 대한 대책 없이 ‘무조건 살린다’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2020년까지 조선 3사의 수주 물량이 급감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면서 무조건 버텨보자고 하는 건 이해가 안 된다”며 “대우조선을 포함한 인위적 산업 재편 등 껄끄러운 문제는 손도 안 댔다”고 지적했다.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공공 발주를 늘리겠다는 방안 외에는 현실성 없이 목표만 나열해놨다”며 “어떻게(how to)가 빠진 부실정책”이라고 꼬집었다.
이태명/안대규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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