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가 뭐길래] 야당은 왜 대통령 하야 요구 못하나?
거국중립내각에 “최순실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며
대통령에겐 국정운영에 손떼라고 요구해 파문
새누리당·국민의당 “사실상 정권 이양 요구”비판
대통령 하야 땐 60일 이내에 차기 대선 치러야
야당이 하야 주장 않는 것은 그 후폭풍 가늠 못해
“문재인, 단기간 내 야당 대표 주자로 우뚝 서리란 보장 없어
시일 촉박…단기간 내 검증 제대로 거치기 어려운 반 총장 유리”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놓고 여야(與野)간, 야야(野野)간 이견이 심하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과 관련, 책임총리제를 헌법에 규정된대로 제대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총리에 내각 추천권과 해임안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자는 게 책임총리제인데, 이 정도로는 정국 수습이 어렵다고 보고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야당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한 상황이어서 야당이 쉽사리 이를 수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막상 새누리당이 이런 제안을 하자 더불어민주당은 반대했다. ‘최순실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이 우선이라고 했다. 거국내각 논의가 본격화 하면 최씨에 대한 검찰 수사의 초점이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내각에 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면 명실상부한 거국내각 가동은 어렵다는 것도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새누리당이 차기 총리를 특정인사를 추천하는 것은 중립 정신을 위배한다는게 민주당의 논리다.
그렇지만 민주당도 거국내각에 대한 내부 교통정리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 거국내각을 수용한다면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해 공동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도 있다. 내년 대선때까지 정부 여당의 실정을 공격하는게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는데, 거국내각을 하게 되면 그게 불가능해져 선뜻 받기 어렵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발언으로 혼란은 더해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거국중립내각에 대해 “시간을 벌어 짝퉁 거국내각으로 위기를 모면할 심산인가”라며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는 수순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또 “거국중립내각이 되려면, 박 대통령이 총리에게 국정의 전권을 맡길 것을 선언하면서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 총리를 추천해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해야 한다. 그리하여 새 총리의 제청으로 새 내각이 구성되면 대통령은 국정에서 손을 떼야할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6일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박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과 함께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촉구한 바 있다.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발언이 사실상 정권 이양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문 전 대표를 거세게 비판했다. 하야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하야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게 새누리당의 주장이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지금처럼 국가가 위중할 때 대통령이 되겠다는 위치에서 자극적인 말로 여당을 공격하고, 또 정권을 과하게 공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SNS에 글을 올려 “총리가 국정을 전담하려면 내각제로 개헌해야 한다”며 “나라가 위기라고 헌법을 까뭉갤 수는 없다”고 했다. 이어 문 전 대표를 향해 “‘대통령 하야하라’는 말을 어쩌면 그렇게 복잡하게 하시나. 대통령 하야 후 60일 뒤면 대통령이 될 자신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진정한 노림수는 국정 혼란, 대통령 하야, 아노미 상태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원진 최고위원은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진정 대통령을 탄핵하고 하야시키려고 하는 것이냐”며 “대한민국이 어떻게 되든 내년 대선에서 정권만 잡으면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대통령을 ‘바지사장’으로 만들어 놓고 실질적인 국정은 야당이 하겠다는 계산”이라고 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문 전 대표는 마치 대통령에 당선된 것 처럼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문 전 대표가 처음 거국내각을 말씀했을 때 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자칫 국민께 권력 나눠먹기로 비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당이 거론하는 거국내각은 사실상 대통령을 2선 후퇴 시키는 것이다. 대통령은 외교안보, 총리는 나머지 국정을 담당케 한다는 게 일반적인 거국내각의 행태다. 안 전 대표를 비롯해 야당 일각에선 대통령은 외교마저 손을 떼라 ?요구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은 대통령직만 유지한 채 손발은 다 묶인다. 임기를 마치는 2018년 2월25일까지 ‘식물 대통령’소리를 들어야 한다. 하야나 마찬가지 상태다.
그런데도 문 전 대표와 야당은 대통령 하야를 입에 담는 것을 꺼려한다. 누구도 그 후폭풍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당 존립 위기에 몰렸다. 그해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물론이다. 그때와 지금의 상황을 단순 비교할 수 없지만 대통령 탄핵이나 하야가 갖는 정치적인 여파는 예측을 쉽게 할 수 없다.
대통령이 하야를 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해야 한다. 문 전 대표가 야권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나타내고 있지만, 단기간에 야권을 아우르면서 우뚝 설 수 있느냐에 대해 장담할 수 없다. 정계 개편이 촉발되면서 야권의 제3주자들이 반문재인으로 뭉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변수도 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만약 박 대통령이 12월 정도에 하야 하고, 반 총장이 임기를 마치고 내년 초에 귀국해 대선에 나선다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칠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지 않느냐”고 했다.
박 대통령이 하야를 한다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행사하는데, 공정한 대선 관리를 할 수 있는냐도 야권이 가질 수 있는 의구심이다. 야권이 오락가락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배경이다. ‘최순실 파문’은 야권에도 큰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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