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한방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한의원에 의료기기나 약을 팔지 말라고 의료기기업체와 제약사에 압력을 행사한 의사단체와 약사단체에 철퇴를 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보란 듯이 소송전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은 2014년 정부가 규제 단두대 과제에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포함하면서 불거졌다. 한의사들은 “촉진이나 문진에만 의존해온 한의사들이 초음파 등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반면 의사들은 “인체구조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하면 오진 등이 생길 위험이 크다”며 반대해왔다.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일부 의사단체는 한의대에 출강하는 의사 명단을 공개하는 등 비난 수위를 높였다. 첨예한 대립 탓인지 두 단체와 협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던 정부는 슬그머니 발을 뺐다.
의사와 한의사가 대립하는 사이 약사와 한약사 간 갈등까지 불거졌다. 약사들은 양방과 달리 한방은 의약분업이 돼 있지 않고 관련 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한약사가 일반의약품 등 양약을 팔아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문제 삼고 나섰다.
이들의 갈등은 상호 비방에 그치지 않았다. 의사와 약사는 소위 ‘갑질’로 맞섰다. 제약사 의료기기 회사 등에 한의원과 한약국에 납품을 끊도록 압력을 넣었다. 제너럴일렉트릭(GE) 등 글로벌 기업조차 이들의 압박에 굴복했다. 일부 업체는 이 과정에서 납품 손실을 떠안기도 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뒤늦게 칼을 들었다. 지난달 의사단체와 약사단체에 각각 11억3700만원, 78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 처분 이후 다툼은 오히려 확대되는 분위기다. 의사 약사 한의사단체는 연일 성명을 내며 서로를 고소·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헤게모니를 잡으려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중재를 나 몰라라 하는 사이 의사 한의사 약사단체 간 밥그릇 싸움은 끝없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 건강은 뒷전이다. 이들의 명분 없는 갈등을 바라보는 국민의 피로도는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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