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창민 기자 ] 세금인 듯, 세금 아닌, 세금 같은 돈. ‘준(準)조세’다. 대기업 53곳이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가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반(半)강제적’으로 출연(기부)한 게 대표적 사례다. 기업들은 각종 법정부담금도 냈다. 일부 채권도 강제로 떠안았다. 이렇게 기업이 작년 한 해 동안 온갖 명목으로 낸 준조세(사회보험료 제외)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한국경제신문이 7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낸 자료와 국세통계연보 등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추산됐다. 지난해 정부가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라 거둔 장애인고용부담금 등 94개 항목의 부담금은 19조10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일반 국민을 제외한 기업이 낸 비중은 70%(13조4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처럼 정부가 팔을 비틀어 내는 돈과 사실상 의무화된 각종 기부금은 통틀어 6조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비공식 기부금을 합하면 더 많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원치 않지만 떠안아야 하는 지역개발채 ?등 강제성 채권도 많다. 매입 비용만 지난해 20조3000억원에 이른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들은 이 채권을 사면서 금리 차에 따른 손실을 봤다. 손실액은 20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재계는 추산하고 있다.
이렇게 기업들이 지난해 낸 준조세(법정부담금+기부금+강제성 채권 등)를 합하면 20조원이 넘는다. 작년에 낸 법인세 45조원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여기에 기업이 부담한 사회보험료(43조5000억원)를 보탠 ‘넓은 의미의 준조세’ 개념으로 따지면 지난해 낸 돈은 64조원에 달한다.
한 대기업 임원은 “기업이 내는 온갖 부담금 등 준조세 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며 “정권의 반강제적 기부금 요구를 막기 위해선 ‘제2의 김영란법(기부 강요 금지법)’이라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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