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누구에게는 허용하고 누구에게는 불허한다면 과연 공정한 플레이인가요? 경기를 운영하는 사람이 처음부터 뇌물먹고 한쪽에 유리하게 운영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개인에게도 똑같이 기회를 줘 공매도를 허용하고 공평한 플레이가 되게 합시다." 개인 주식투자자 A씨(아이디 rose****)
공매도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공매도 잔고 공시제' 도입 이후에도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개선안이 나오고 있지만 빈대(공매도) 잡으려다 초가삼간(기업 자금조달 창구)을 다 태울 수 있어 섣불리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공매도를 한 투자자는 해당 종목의 유상증자 참여를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금융당국에서 관련 규정의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미 선진국에서는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일본에서는 유상증자 공시 후 공매도를 한 투자자가 유상증자에 참여해 받은 주식을 사용(차입한 주식을 상환)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증자 발행가격이 결정되기 5영업일 전부터 발행가격 결정 당일까지 공매도를 한 경우 증자에 참여할 수 없다.
지난달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유상증자 과정의 공매도 케이스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어 공매도 제도의 '손질' 가능성은 고조되고 있다.
임 위원장은 "그동안 나왔던 유상증자 과정의 공매도 사안을 놓고 제도 자체의 문제인지 불공정 거래 행위자의 문제인지 구분할 것"이라며 "만약 제도 개선사항이 필요하면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공매도 잔고 공시제' 도입 이후의 시장 상황을 살피고, 논란이 됐던 공매도 사례들도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 '공매도 공시제' 유명무실…공시시한 단축 도입 유력
지난달 30일 한미약품 사태에 앞서 7월 현대상선의 대규모 유상증자, 4월 중국원양자원 계열사 지분 30% 가압류 허위 공시 등은 최근 공매도로 논란이 됐던 대표 사례들이다.
이 사례들은 공매도 공시제의 효과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여과없이 보여준 경우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6월말 '주식에 대한 공매도 잔액 비율이 0.5% 이상이면 잔액과 수량을 공시'하도록 하는 공매도 공시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기관이 공매도 거래를 한 뒤 3거래일이 지나야만 공시를 통해 공매도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한미약품 사태 당시에도 기관을 중심으로 대규모 공매도가 나타났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3거래일 동안 누가 공매도를 했는지 파악할 수 없어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이에 따라 현재 '거래 후 3일'인 공매도 공시시한을 줄이는 방안의 도입이 유력하다. 정치권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상욱 새누리당 의원은 "판이 다 끝난 뒤에 공시가 나오면 개인투자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공시시한 단축을 주장했다.
물론 이를 개선한다고 해도 제도의 허점은 여전하다. 0.5% 이하인 소량의 공매도는 알 수 없는데다, 공매도를 대리하는 증권사 이름으로 공시돼 실제 공매도 주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공매도 기간 60일 이내로 "해결책 안되…규제 보단 개인 접근성 높여야"
새누리당은 상장 주식의 공매도 기간을 60일 이내로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홍문표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식을 대여해서 공매도하는 기관 등은 60일을 초과해 공매도할 수 없다. 60일 이내에 빌린 주식을 매수해 상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기간을 60일로 제한한 것은 일반 주식투자자들의 신용거래 상환기일인 60일에 맞춘 것으로 기관과 개인투자자의 형평성을 감안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투자기간 제한이 공매도 문제의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대형 증권사 파생상품담당 연구원은 "공매도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기간 제한으로 표출되고 있지만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이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불균형한 정보에 따른 개인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관과 외국인의 공매도를 규제하기보다는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 더 유효하다는 주장이다. 현재 개인은 사실상 공매도는 못하지만 대주거래(주식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고 증권사에서 해당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식값이 판 가격보다 더 떨어지면 사서 상환해 차익을 얻는 거래)를 통해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대차거래는 공매도 제도(주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주문을 내고 주식을 매도)와 비교했을 때, 주식 하락에 베팅하는 점은 같지만 '없는 것을 판다'는 게 아니라 '빌려서 판다'는 개념이다.
다만 국내 공매도제도는 차입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만 허용돼있어 기관 등 실질적 공매도 세력들도 대주거래와 마찬가지로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공매도에 나설 수 있다.
비슷하지만 차이는 있다. 기관들은 일정 수수료율만 내면 기간(계약별로 상이하나 6개월~1년이 다수)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공매도를 이용할 수 있다. 반면 대주거래는 이용 가능기간이 최대 60일로 제한돼 있다.
또 개인의 신용거래 설정을 바탕으로, 주식 매각대금의 일정 비율을 담보로 제공해야 하며 증권 潁떪?보유 주식과 수량이 다르므로 종목 등에 제한이 있다. 이자(수수료)도 높아 실질적으로 활용도는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개인 투자자들의 신용도가 기관 및 외국인 투자자들에 비해 낮은 편이기 때문에 불리한 차입조건이 적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면서도 "현재의 차입환경은 개인의 접근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 "무차입 공매도 도입 고려해봐야…불공정세력 처벌 강화 필요"
차입공매도만 허용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매도 주문을 낼 수 있는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 Selling)를 허용하고 있다. 아울러 국내에는 시장가격 밑으로는 호가를 낼 수 없도록 하는 업틱룰(uptick rule) 같은 공매도 포지션 제도가 있어 공매도 제약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공원배 현대증권 연구원은 "차입 공매도만 가능한 한국은 개인의 접근성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며 "증권사에서 접근성을 높여 주거나, 증거금을 내고 공매도를 하는 무차입공매도 등의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규제 기조가 달갑지 않다. 공매도를 둘러싼 문제의 해결책은 규제가 아닌 '불공정세력에 대한 처벌 강화'에 있다는 주장이다.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규제는 시장 침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빈기범 명지대학교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제도를 악용해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공정거래세력"이라며 "이들의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야지 제도의 개선이나 폐지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도 "공매도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하면 국내 자본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지고 시장은 더 위축될 것"이라며 "대주거래 활성화 등을 통해 개인의 공매도 접근성을 강화, 형평성을 맞추는 방안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개미무덤(?)' 공매도①] 외국인·기관의 전유물…개인만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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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선희/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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