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한국 사회의 충격은 죄다 미국 탓일까. 물론 ‘동부 언론’으로 불리는 미국 주류 언론들의 친클린턴 성향이 선거 예측에서 커다란 오류를 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지난달 말 몇몇 여론조사에서 트럼프는 이미 클린턴을 앞서기도 했지만 한국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주목하지 않았다. CNN 등 언론 보도를 수동적으로 접하다 보니 미국 사회 저변의 흐름을 제대로 꿰뚫지 못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일에서 드러났듯이, 국제정세의 큰 변화와 흐름을 읽는 우리의 국가적 능력에 뭔가 큰 구멍이 났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 차원에서 뭔가를 판단하는 시스템에 심각한 고장이 감지된다는 얘기다. 이는 브렉시트 투표 때도 여실히 드러났다. 한국 내에서는 브렉시트 가능성을 매우 낮게 봤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브렉시트 투표 후 영국 경제가 큰 충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이 예상도 빗나갔다.
국내 문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낡은 상식과 사회 분위기 등에 휩쓸려 무엇이 진실이고 사실인지,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거의 상실한 듯 보인다. 멀게 보면 광우병 사태부터 가까이는 최근 국정 혼란에 이르기까지 각종 사회적 이슈와 논란에는 예외 없이 진영논리가 개입돼 사건의 본질에서 멀어지기 일쑤다. 정부, 정당, 학계 모두 예외가 없고 일부 언론은 이를 부추기기까지 한다.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시스템은 구석기 시대다. 이러다간 정말 심각한 상황에서는 비상벨조차 안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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