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입시비리 의혹에 격분…수능 앞두고 '정의사회' 외쳐
(2) 유모차 부대
"부끄러운 부모 안될 것…시민들이 세상 바꾸자"
(3) 혼자서도 간다
SNS로 시간·장소 공유…집회장서 만나 함께 움직여
(4) 속죄한다는 60~70대
"아무 생각없이 박 대통령 뽑아 자식 세대에 죄 지은 느낌"
[ 황정환 기자 ] 지난 12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세 번째 주말 촛불집회를 찾은 100만명(주최 측 추산)은 대부분 평범한 시민이었다. 집회 주최 측인 1500여개 시민단체 연합이 전국 각지에서 조직적으로 동원한 인원은 20만명 수준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80만여명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이었다. 정유라 부정입학 의혹에 가슴을 친 중고생, 유모차를 끌고 자녀와 함께 나온 가족, 홀로 시위장을 찾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족, 박근혜 정부에 배신당해 처음 시위장을 찾았다는 60대 등 각계각층이 몰려들었다.
◆수능 앞둔 교복부대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은 집회장에서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최씨 딸 정유라 씨와 관련된 각종 입시비리 의혹에 분노했다. 정씨는 이화여대 부정입학과 청담고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정씨는 SNS에 “부모 잘 만난 孤?능력”이라는 글을 올려 중고생을 더 화나게 했다.
오는 17일 수학능력시험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생들도 거리로 뛰쳐나왔다. 박종택 군(18·서울 신목고3)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밤잠 줄이며 공부하는 수십만 청년들의 꿈을 대통령이 짓밟은 것에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평화 시위의 상징’ 유모차 부대
가족 단위로 참가한 ‘유모차 부대’는 평화 시위의 상징이었다. 유모차를 끌거나 자녀들 손을 잡고 시위 현장을 누볐다. 아내와 유모차를 끌고 온 김상환 씨(46)는 “두 아들에게 우리 사회에 정의는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주연 씨(29·여)는 언니 부부와 세 살짜리 조카와 함께 왔다. 그는 “나중에 생길 내 아이들이 엄마는 그 자리에 있었느냐고 물어볼 때 부끄러운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시위장에서 접선하는 ‘혼참러’
홀로 시위장을 찾아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친 ‘혼참러(혼자 참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김모씨(34)는 “시위에 참가하는 건 처음이라 아직 어색하지만 ‘무당’ 같은 사람에게 국정이 농단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혼자서라도 나왔다”고 말했다.
혼참러 상당수는 SNS에 익숙한 20~30대 직장인이었다. 이들은 SNS를 통해 만나는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뒤 홀로 참가해 집회장에서 같이 움직인다.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깃발을 준비하고, 붉은 뿔을 착용하기도 한다. 세종시에서 홀로 상경한 직장인 전모씨(28)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는데 무능은 용서할 수 있어도 정의를 저버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며 “정의와 양심을 부르짖기 위해 혼자라도 참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60대 시위장서 “잘못 뽑았다”며 속죄
박 대통령의 ‘콘트리트 지지층’이라 불린 노인도 많았다. 새누리당의 골수 지지자라는 이모씨(64·서울 한남동)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민의 피땀으로 세운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근혜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나왔다”며 “이번 문제는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나설 문제”라고 했다.
부산이 고향이라는 60대 여성 곽모씨는 딸 이민주 씨(25)와 함께 시위장을 찾았다. 곽씨는 “지난 대선 때 아무 생각 없이 야당이 싫어 박 대통령을 뽑았다”며 “자식 세대에게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 평생 처음으로 시위장을 찾았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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