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미 기자 ]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금융시장이 출렁거리자 한국은행이 딜레마에 빠졌다. 자금 유출을 생각하면 기준금리를 올리고, 저성장에 대비하려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어느 쪽도 여건이 마땅치 않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18일 시중 은행장들이 참석한 금융협의회에서 “(지난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직후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일시에 증폭됐다가 단기간에 안정됐다”며 “그런데 이번 미국 대선 결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지 쉽사리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 금리 인상 기대까지 겹치면서 자금 유출이 걱정거리로 떠올랐다. 미 금리가 오르면 신흥국에 들어온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귀환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 주식시장에서만 1조8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가 하락하면 외국인 자금이 추가 이탈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자본 유출이 극심할 때 통화당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기준금리 인상이다. 하지만 가계부채가 급증한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높 팁愎? 가계빚 폭탄이 터지면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오히려 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트럼프의 경제정책이 더 큰 악재가 될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 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골드만삭스와 노무라 등 해외 투자은행(IB)들은 내년 금리 인하 관측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문제는 금리 인하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통화위원들은 저금리가 가계부채 급증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트럼프의 정책이 윤곽을 드러낼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따라서 당분간 한은이 금리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아래 한은의 운신 폭은 좁아졌다”며 “기준금리는 내년에 동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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