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화동의 데스크 시각] 온국민의 '순실증' 치유하려면

입력 2016-11-20 17:28  

서화동 문화부장 fireboy@hankyung.com


며칠 전 세무서에 다녀왔다. 2011년도 연말정산 때 부양가족공제를 초과 신청했다며 수정 신고하라고 국세청이 통보해서다. 부양가족을 한 명 더 신청했다는 것인데, 무슨 세금을 5년이나 지나서 바로잡으라는 것인지 뜨악함을 금치 못했다.

세무서 직원이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 계산해낸 추가 납부 금액은 38만여원. 세금을 내러 은행에 갔더니 왜 이렇게 오래된 세금을 이제야 내느냐고 묻는다. 사정을 설명하니 창구 직원이 이런다. “요즘 국세청이 정말 열심히 찾아내는가 봐요. 이런 세금 내러 오는 분이 많거든요. 근데 이렇게 세금 걷어서 최순실 같은 사람이 다 써버리니….”

온 국민을 괴롭히고 있는 ‘순실증’은 은행 창구에서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분노와 우울, 자괴감, 무기력증, 노력해서 뭐하나 하는 식의 자조적인 태도 등의 복합적 증상이 이른바 순실증이다.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검찰이 판단한 최순실 게이트의 피해는 단지 금전적인 액수에 그치지 않는다. 어린이부터 학생, 청년,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국민 마음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남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대통령을 비롯한 이 사태 가해자들은 무슨 생각에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남의 것을 탐하는 이들

권력형 비리나 부정부패는 대부분 ‘금전 사고’로 귀결된다. 시작은 달리했더라도 종착지는 거의 같다. 돈이 처음이나 중간에 개입되든 나중에 개입되든 순서만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이런 사건의 가해자들은 땀과 노동의 가치를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물이든 명예든 남의 것을 빼앗고 훔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건 이런 까닭이다.

20일 검찰이 발표한 대로라면 대통령과 그 측근, 비선 실세들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기금 출연을 기업들에 요구했다. 납품, 광고 수주, 인사청탁 등 비리 유형도 다양했다. 기업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낸 돈은 어디서 왔을까. 마법처럼 뚝딱 돈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기업의 돈은 주주들과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와 땀의 대가다.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세금은 국민의 피와 땀이다. 계산 방법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씨와 관련 인물들이 개입하거나 이익을 보는 ‘최순실 예산’이 약 35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금은 국민의 눈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네 살짜리 외손녀가 붉은 치파오를 입고 당나라 시를 암송하는 동영상이 큰 화제가 됐다. 그중 하나인 당나라 시인 이신의 ‘민농(憫農)’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누가 알리오 밥상 위의 밥이(誰知盤中餐·수지반중찬), 알알이 모두 농민의 노고임을(粒粒皆辛苦·입립개신고).’ 한여름 뙤약볕에 논을 매는 농부의 땀을 보고 쓴 시다.

최순실 게이트의 관련자들을 처벌할 때 판결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갔으면 한다. ‘금동이의 맛난 술은 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백성의 기름이라(玉盤佳肴萬姓膏)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燭淚落時民淚落)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높도다(歌聲高處怨聲高).’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읊은 시다.

서화동 문화부장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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