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엔 개인 휴대폰 사용
[ 강경민 기자 ] 정부 부처 차관인 A씨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뒤 부처에서 지급받은 공용 휴대폰(보안폰)을 쓰지 않고 책상 속 서랍에 넣어뒀다. 기자들과의 통화뿐 아니라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할 때도 개인 휴대폰을 사용한다. A차관은 “보안폰을 썼다가 자칫 감청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개인 휴대폰만 쓰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장·차관 및 실·국장 등 국가직 고위공무원에게 보안 강화를 목적으로 나눠준 공용 휴대폰이 외면받고 있다. 지난달 말 최씨 사태가 불거진 뒤 혹시 모를 감청 등을 의식해 공무용 휴대폰 사용을 꺼리고 있다.
정부는 2014년 3월 말부터 국가직 고위공무원 1000여명에게 ‘보안폰’으로 불리는 스마트폰을 지급했다. 당시 국가정보원이 공무원 공용 휴대폰의 필요성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의 지시를 받은 행정자치부가 공무원들에게 공용 휴대폰을 나눠줬다. 모바일 문서 결재 기능도 추가했다.
하지만 지급 당시부터 공용 휴대폰 사용을 주저하는 공무원이 적지 않았다. 한 고위공무원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감청을 위한 칩이나 프로그램이 설치돼 있는 게 아닌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상당수 고위공무원이 공용 휴대폰을 쓰지 않고 책상 서랍에 보관해 ‘서랍폰’으로 불리기도 했다.
개인 휴대폰 번호 유출을 꺼리는 일부 장·차관들이 초기에 정부 지침을 따라 공용 휴대폰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들어 개인 휴대폰을 쓰는 장·차관이 부쩍 늘어났다는 게 각 부처 공무원들의 설명이다.
한 공무원은 “며칠 전 장관께서 익숙한 공용 휴대폰 대신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해 업무내용을 물어봐 깜짝 놀랐다”고 했다. 현직 B차관은 “요즘엔 언론사 기자들과 통화할 때는 공식적인 업무라도 반드시 개인 휴대폰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조차 정부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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