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로머가 거시경제학계의 내부고발자가 된 이유

입력 2016-11-22 11:37   수정 2016-11-22 20:31



(박진우 국제부 기자) 폴 로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경제학 교과서 저자로 유명한 경제학자입니다. 지난 6일 미국 뉴욕대가 “오는 10일 오전 11시 스턴경영대학원 커프먼센터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교수의 기자회견을 연다”고 공지를 올려 이름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로머는 노벨경제학상이 아니더라도 최근 경제학계에서 화제의 인물입니다. ‘거시경제학계의 반란군’으로 떠오른 때문이죠. 그가 주목 받은 건 지난 9월14일 자신의 블로그(http://paulromer.net)에 올린 ‘거시경제학의 문제(The Trouble With Macroeconomics)’라는 제목의 글 때문입니다. 분량은 A4용지 25쪽이지만 내용은 지식이 짧은 제겐 어려웠습니다. 이 글은 미국 경제학자 모임인 오미크론델타엡실론협회(ODE) 기념 강연의 원고였다고 합니다.

로머도 처음엔 거시경제학을 ‘수학에 매몰된 유사과학’으로 매도하거나 수많은 동료를 분노케 할 계획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가 애시당초 준비하려던 글은 경제성장이론의 진보를 기리는 데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직을 넘겨 받기 수개월 전에 글을 쓰려고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양심에 찔리는게 있駭鳴?합니다. 어쨌거나 세계 경제 성장은 더뎠고, 많은 동료들이 예측 모델에 적용했던 수학은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그래서 로머는 최근 워싱턴DC에 있는 세계은행 본사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을 말할 것입니다. 나도 내가 옳은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말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얘기했습니다.”

로머가 9월 블로그에 올린 글은 ‘로머의 친구들 사이에 투척된 수류탄 같은 가열찬 비판‘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대침체를 내다보지도 못했고, 효과적인 회복대책을 제안하지도 못했죠. 이번에 세계은행에서 진행한 인터뷰도 당시 글의 논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로머는 특정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을 실제에 맞춰 검증하기보다 명성을 지키는 데 더 관심을 가져 과학으로부터 유리되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사실을 밝히기보다 친분을 지키는 데 신경쓴다”는 비판입니다. 현대 경제학의 문제를 이렇게 꼬집었습니다. “A를 가정하자, B를 가정하자, C를 가정하자…그래서 우리는 P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현대 경제학 모델들은 한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소비자, 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사용가능한 정보를 모두 활용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합리적 기대’ 이론입니다. 로머는 이게 틀렸을 뿐 아니라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져 정부가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없도록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봤습니다.

이 논쟁의 시발점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케인즈는 1929년부터 시작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책결정자들이 더 과감한 정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케인즈의 아이디어는 1970년대까지 주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처방한 정책은 1970년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을 막아내는 데 실패했습니다.

기존 케인즈 이론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하려는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기대를 가진 똑같은 경제주체들로 구성된 실물경기변동(RBC)이론을 고안해냈습니다. RBC 이론을 응용해 만들어진 모델이 동태확률일반균형(DSGE)입니다. 합리적 기대를 갖는 경제주체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 똑같이 행동에 옮깁니다. 예를 들면 정부가 소비자들의 주머니에 현금을 넣어주면, 소비자들은 앞으로 세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고 모두가 소비를 늘리지 않습니다. 재정정책은 무력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죠. 통화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이론의 문제는 경제주체가 합리적 기대와 어긋나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도 ‘내생변수’라는 얘기죠. RBC는 경기 변동이 외부 충격 때문에 일어난다고 봅니다. 로머는 수많은 최첨단의 경제학 모델이 기초적인 질문에도 답해주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봤습니다. 예를 들면 RBC는 ‘생산성이 왜 정체됐나?’는 질문에 답해주지 못합니다. RBC에서 생산성은 그저 상수로 주어지는 외부 충격에 불과하니까요.

로머는 이 충격마저도 현실에서 관찰하기 어려운 것들이라고 비판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일보다 여가를 선호하는 정도, 단위 생산요소당 소비재 및 자본재 생산량 변화 같은 것들을 현실에서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는 이 외부 충격 변수들을 ‘플로지스톤’이라고 표현합니다. 플로지스톤이란 물질이 연소될 때 소모된다는 상상 속의 입자로, 18세기에 허구로 판명된 학설입니다. 그 외에 ‘트롤(상상 속의 괴물)’, ‘그렘린(기계를 고장내는 상상 속의 동물)’ 등으로 비꼬았습니다.

이런 변수들은 현실에서 측정되기 어렵고 의미가 모호하다보니 이 변수들로 이뤄진 이론을 검증하기도 어렵습니다. 애매한 값들로는 수요-공급 관계조차도 나타내기가 어렵다는 게 그의 지적입니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여러 이론을 차용해왔지만 변수를 ‘식별(identification)’할 수 없다는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그래서 로머는 이를 ‘RBC 돼지’라고 부릅니다.

로머는 경제학이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쌓아올리는 기존 모델보다 좀더 현실에 가까워야 한다고 봤습니다. “경제학자는 응당 ‘무엇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무엇이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요인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DSGE 모델은 각국 중앙은행에서도 활용합니다.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에선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말해왔습니다. 벤자민 프리드먼 하버드대 정치경제학과 교수는 “합리적 기대의 가장 중요한 함의는 통화정책이 경제활동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라면서 “Fed는 이 사실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죠.

하지만 로머의 초점은 다릅니다. 재닛 옐런 의장 같은 Fed 최상위 인사보다는 Fed 내 연구 부서의 젊은 학자들에게 이론이 과도한 영향을 미친다고 얘기합니다.

옐런 의장은 확실히 이론보募?‘실증’에 무게를 싣는 것 같습니다. 그는 “대공황과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처럼 2008년 금융위기도 경제학에 ‘비슷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론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로머가 얘기하듯, 옐런 의장도 현대 경제학 모델은 똑같이 합리적 기대를 갖는 가계를 가정해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질책했습니다.

로머는 옐런 의장이 다소 ‘외교적’이라고 지적합니다. 현대 경제학 모델이 비현실적으로 나아가게끔 만든 원인을 직접 겨냥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로머는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로버트 루카스, 토마스 사전트, 에드워드 프레스콧. 즉, 합리적 기대이론의 ‘설계자’들이 문제라고요. 참고로 로버트 루카스는 폴 로머의 스승입니다.

사전트는 반박했습니다. 그는 로머가 경제주체의 행동을 반영하기 위해 수정한 그들의 모델을 접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전트는 이메일에서 그가 25~30년 전 방법론에 매몰돼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의 동료들도 로머를 비난했습니다. 그들 중 다수가 1930년대 케인즈와 달리 로머는 그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라다라얀 차리 미네소타대 경제학과 교수는 “건물을 불 태우고 난 다음에 바닥을 다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건설적인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로머도 즉각 반박했습니다. “나는 ‘차가 부서졌다’고 말하는데, 그들은 ‘로머는 차를 고칠 수 없으니까 나쁜 놈이다.’라고 말한다.”

로머는 젊은 경제학자들에게 적어도 어떤 방향으로 과학적 탐구를 진행해야 하는지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권위자도 저절로 추종받거나 비판을 넘어선 존재가 되선 안된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같은 생각으로 똘똘 뭉친 학자 그룹 외부의 목소리가 무시되어서는 안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는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너무도 많은 경제학자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믿음은 수학이 우주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당신에게 얘기해줄 수 있다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로머가 홀로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닙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대 교수도 “이제 동태확률일반균형(DSGE) 모델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에 보낸 서한에서 “DSGE는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지만 개선 가능하고 미래 거시경제학의 핵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로머의 글에 달린 여러 학자들의 댓글은 대체로 로머의 주장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DSGE에서 여러 혁신이 일어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로머는 상아탑보다는 지금처럼 세계은행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세계은행의 구제금융은 정책 권고사항이 첨부되고, 세계은행 연구결과도 개발도상국에서 이를 참고해 성장 방식을 채택할 정도로 현실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여담으로 향후 수년간 세계은행은 험난한 길을 겪을 것 같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아메리카 퍼스트’에 적응해야 하니까요. /(끝) jwp@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