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특검에 재계 초비상
본업 손 놓은 기업들
대기업 총수들 출석 대기…내달 줄줄이 불려나갈 판
대외 신인도에 타격
'기업은 피해자' 결론났는데 또 범죄인 취급할까 걱정
반기업 정서 확산도 부담
인사 폭·시기 아직 못 정해…내년 투자계획도 '올스톱'
[ 장창민 기자 ]
국내 주요 그룹들의 ‘경영 시계’가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울 여의도에 맞춰지고 있다. 다음달 5일 대기업 총수들이 줄줄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려 나갈 판이어서다. 기업들은 임원 인사나 사업계획 수립 등 본업(本業)을 모두 제쳐놓은 채 청문회 준비에 내몰린 분위기다. 국회가 또다시 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호통을 치거나 ‘공개 망신’을 주는 장면이 여과 없이 TV로 생중계되면 기업 대외신인도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라며 재계는 노심초사하고 있다.
노심초사하는 9개 그룹
재계는 초비상이다.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과 작년 7월 면담한 총수들을 무더기로 다음달 5일 열리는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해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등이다. 이들은 다음달 말부터는 특별검사의 조사도 받아야 한다.
이들 그룹의 업무 1순위는 국정조사 준비가 됐다. 일부 그룹은 국정조사 및 특검 대비 전담팀까지 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국회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대부분 막혀 상당수 기업이 발만 구르고 있다. 재계 고위관계자는 “국회의원이나 보좌관들이 전경련이나 개별 기업 대관담당 임원들의 전화는 받지도 않는 분위기”라며 “대한상공회의소를 통해 국회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는 정도”라고 귀띔했다.
대기업들은 총수 출석 및 공개 여부, 발언 수위 등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 자칫 괜한 말로 트집을 잡히거나 위증(僞證) 논란에 휩싸일 수 있어서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이기 때문에 회장이 경영 일정을 이유로 국정조사 출석을 미루긴 어려울 것 같다”며 “그렇다고 특검을 앞두고 공개 석상인 청문회에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구구절절 말하기도 어려워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대외 신인도 하락에 대한 우려도 크다. 검찰 수사에선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과 관련해 ‘기업은 피해자’라는 결론이 났지만, 국정조사 ?특검 과정에서 기업인들이 다시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모습으로 비쳐질 수 있어서다. 10대 그룹의 한 임원은 “앞으로 일부 총수가 출국금지나 기소 등을 당하기라도 하면 당장 해외 사업 관련 계약이나 거래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했다.
반(反)기업 정서 확산도 큰 걱정거리다. 국정조사와 특검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앞으로 국정조사나 특검 결과에 따라 시민단체들이 집단소송을 내 기업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시계 제로’…경영 공백 우려
재계에서는 기업 인사나 투자계획 수립, 신성장동력 발굴 등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내놓고 있다. 삼성 현대차 SK LG 등 주요 그룹은 연말 인사 폭과 시기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분위기다. 대부분 파격적인 세대교체보다는, 소폭 인사로 조직을 정비하면서 안정을 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SK LG CJ 등 일부 그룹은 당초 계획보다 임원 인사 시기를 미뤘다. 재계 관계자는 “국정조사와 특검에 총수뿐만 아니라 상당수 임원이 불려다니게 될 것”이라며 “대대적인 인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전했다.
경영 공백 우려도 크다. 기업 총수들이 국정조사와 특검에 발이 묶여 경영에 몰두하기 어려워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 경영진이 사업계획을 다듬고 글로벌 전략을 짜야 할 시기인 올해 말과 내년 초까지 변호사들과 대책 회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 판”이라며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시비를 가려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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