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I: 시선] 화려한 조명 뒤 '유리천장'에 갇힌 여배우들

입력 2016-12-01 13:59   수정 2016-12-01 14:07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여배우가 단독 주연이면 투자 받기 힘들어요. 이런 경우 남자 캐릭터를 굳이 끼워 넣기도 하죠. 배우 뿐 아니라 여성 감독들의 입지도 현저히 낮아요. 여전히 남성 감독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입니다." (영화계 관계자)

여배우들은 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들의 외모와 패션, 사생활은 시시콜콜한 것 하나까지 대중의 관심 안에 있다. 그렇다면 여배우들이 중심에 선 영화는 어떨까.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배우들이 딛고 선 충무로는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데다 여배우가 중심에 선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뿌리깊게 박혀있다.

여성을 소재로 한 영화나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여배우가 단독 주연인 영화가 나오기 힘든 이유다.

◆ 여성 영화, 시나리오 좋아도 투자 난항

배우 엄지원은 최근 영화 '미씽' 개봉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는 재밌다고 소문이 난 상태였다"며 "그런데도 투자 받기가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 영화에 대한 편견이자 스토리에 대한 편견이 많았다"며 "이 영화 출연을 결정하고 난 뒤 대형 투자사 관계자들로부터 '정말 출연하기로 했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난항 끝에 '미씽' 제작은 '결혼전야'(감독 홍지영), '제보자'(감독 임순례) 등 여성 감독들과 함께 작업했던 메가박스(주)엠플러스가 맡았다.

메가박스 관계자는 "여성 영화에 대한 업계의 우려를 알고 있었다"면서도 "이보다는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고 투자 배경을 밝혔다.

이어 "시나리오도 좋았고, 배우 역시 믿음직스러웠다. 이렇게 좋은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것은 영화인으로서 태만"이라며 "흥행에 관한 건 마케팅으로 극복할 숙제"라고 말했다.

앞서 개봉했던 영화 '굿바이 싱글'과 '덕혜옹주'도 사정은 '미씽'과 다르지 않았다.

지난 6월 개봉한 '굿바이 싱글'은 철없는 40대 여배우 주연과 철이 일찍 들어버린 10대 여중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여성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그렸다. 배우 김혜수가 주연을 맡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주연이라는 한 여성의 삶에 공감해 꼭 출연하고 싶었던 영화였다"며 "하지만 투자가 지지부진했다"고 밝혔다.

결국 김혜수 소속사 호두앤유 엔터테인먼트가 나섰다. 2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 끝에 쇼박스와 공동 제작해 영화를 개봉했다.

현재 김혜수와 그의 소속사는 또 다른 여성 영화인 '소중한 여인'을 제작 중이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이야기를 그린 '덕혜옹주' 역시 주연 배우 손예진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다.

스케일이 큰 시대극인만큼 신경 써야 할 디테일은 많았지만 제작비는 한정돼 있었다. 손예진은 "예산 때문에 작품 질을 포기하긴 싫다"며 사비 10억원을 투자했다.

◆ 할리우드도 '셀룰로이드 천장' 여전

실제 영화계는 그 어느 곳보다 '유리천장'이 두터운 곳이다. 매해 140~150여편 영화가 만들어지지만 이 중 여성을 소재로 하거나 여성 감독, 여배우가 전면에 나선 작품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여성 이야기는 재미 없다는 오해, 여배우 단독으로는 관객을 끌어모으기 힘들다는 편견 등이 영화계 안팎을 둘러싸고 있다.

영화 제작사 한 관계자는 "제작 미팅을 하면 투자자들은 대부분 남자"라며 "영화계에는 아직도 여성 감독과 여배우에 대한 고질적인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영화 '여교사'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유인영도 최근 제작발표회에서 "남성 위주 영화들이 많다 보니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작품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 영화 김태용 감독은 "'여교사'와 '미씽'과 같은 여성의 심리를 그려낸 영화도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다"며 "여성 영화가 장르적으로 다양화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한 할리우드 역시 여성 영화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한다. 할리우드에서는 여성을 홀대하는 분위기를 '셀룰로이드(필름의 재료)천장'이라는 단어로 꼬집는다.

앞서 영화 '헝거게임' 등에 출연한 유명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는 여배우가 남성 배우보다 출연료를 적게 받는 관행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성격이 까다로운 것처럼 보일까봐 내 의견을 좋게 표현하는 데만 몰두했다"며 "남성 배우들은 이런 걱정을 하지 않고도 높은 출연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한국 영화 연간 관객 수는 5년 연속 1억 명을 돌파했다. 올해 총관객 수는 2억 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객은 이제 범죄 액션이나 로맨틱 코미디에 치중한 '식상한' 영화가 아닌 '신선한' 영화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여성의, 여배우에 의한, 모두를 위한 영화가 필요한 때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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