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흔쾌히 응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푸르덴셜은 사회심리학자 애덤 알터와 함께 사람들의 심리 분석을 위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길거리 커피 트럭 앞에서 낯선 사람에게 그들의 커피값을 자신의 은퇴를 위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대답은 우리가 예상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고 웃어넘기기도 하고, 오히려 자기를 위해 1달러를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1달러를 나눠 달라는 사람이 타인이 아니라 ‘미래의 나’라면 과연 어떨까.
뇌는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내측전전두엽 부위가 활성화되고, 타인을 생각하면 이 부위가 흐릿해진다. 그런데 ‘미래의 나'를 생각할 때 이 부위가 흐릿해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우리는 ‘미래의 나’를 타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행동 경제학의 여러 이론을 정립한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Thinking fast and slow)》에서 우리의 뇌는 천천히 논리적으로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 ‘느린 사고(slow thinking)’보다는 감성적이며 직관적으로 즉각 작용하는 ‘빠른 사고(fast thinking)’를 하려는 경향이 있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은퇴 문제에 이를 대입해 보자. 사람이 이성적이라면 은퇴 후를 대비해 미리 저축해야 하고, 아무리 급하더라도 퇴직금을 쓰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데, 행동경제학으로 이런 불합리한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다. 사람은 ‘미래의 나’를 타인처럼 인식하기 때문에 타인의 은퇴자금보다는 현재 나의 즐거움을 선택한다. 즉 우리가 은퇴준비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우리 뇌의 사고 경향성에 따르면 당연하다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법은 미래의 나를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려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푸르덴셜은 최면요법 전문가를 동원해 은퇴를 앞둔 12명의 참가자에게 자신의 미래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 중 4분의 3이 자신의 은퇴를 위해 좀 더 많이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고, 절반이 넘는 참가자들이 두 배가량 더 저축할 것이라고 답했다. 즉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미래의 나를 타인이 아니라 또 하나의 나라고 인식함으로써 은퇴를 ‘나’의 문제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30년 후 모습을 현재의 모습에 견줘 구체적인 것부터 그려보자. 배우자가 어떤 취미를 갖고 있을지, 몇 평짜리 집에 살게 될지, 애완견은 몇 마리를 키울지 등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봐야 한다. 그러면 미래의 나에게 좀 더 감정이입이 되고, 미래를 위한 현재의 선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될 것이다. 노후 플랜은 우리의 본능 때문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실패를 벗어날 방법도 그리 먼 곳에 있지만은 않다.
김성태 < 푸르덴셜생명 Wealth Manag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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