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 한국 가계 소비, 신흥국보다 금리변동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

입력 2016-12-04 17:58  

이우헌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경기변동을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현대 거시경제이론은 ‘실물경기변동이론’이다. 이 이론은 경기변동을 외부 충격에 가계와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가 반응해 가는 균형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는 총수요 측면을 강조한 케인스학파가 설명하지 못한 1970년대 석유파동과 1990년대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등을 분석해내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경기변동이론을 통해 밝혀진 사실 중 하나는 대개 소비의 변동이 소득의 변동보다 완만하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현대 소비이론에 따르면 소비자(가계)는 일생 동안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소비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은 현재 사과 10개를 먹고 미래엔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것보다 현재 9개를 먹고 미래에 1개를 먹는 것을 선호한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 때문이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사과 1개를 먹을 수 있을 때 얻는 효용이 더 크다. 이런 논리를 반복하면 소비자들은 일생 동안 효용을 최대화하기 위해 가능하면 소비를 큰 변동 없이 유지하고자 한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이처럼 소득보다 소비의 변동이 작은 현상은 주로 선진국에서 나타난다. 신흥국에서는 거꾸로 소비의 변동이 소득의 변동보다 크다. 한국 역시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기부터 최근까지 소비의 변동이 소득의 변동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 소비의 변동이 소득의 변동보다 큰 이유에 대한 첫 번째 가설은 이렇다. 신흥국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충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생산과 소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주체는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소비를 더 크게 감소시킨다. 두 번째는 신흥국은 대내외 요인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이자율 변동 폭이 큰 만큼 가계의 소비 변동 폭도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는 주로 중남미 국가를 대상으로 한 분석 결과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중남미 국가와 성격이 다르다. 기존 분석 방법으로는 소득 변동 폭에 비해 소비 변동 폭이 큰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필자는 한국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한국의 이자율 변동은 중남미 국가 등 신흥국보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작은 이자율 변동에도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대내외 변수로 인해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중남미 신흥국은 이자율 변동이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비의 변동이 크지만 한국은 작은 이자율 변동에도 소비의 변동이 크다. 또 한국의 생산성이 낮아져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면 한국과 국제 이자율의 차이를 나타내는 국가위험보상(국가 리스크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이때 가계는 실제 소득보다 소비를 더 많이 줄이는 등 소비 변동 폭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이우헌 < 경희대 교수·경제학 >

◆이 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가 출판하는 학술지 ‘매크로이코노믹 다이내믹스(Macroeconomic Dynamics)’에 2017년 4월 게재 예정인 논문 <실물경기변동이론은 한국의 경기변동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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