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6월 일본 120만배럴 감산…역대 최고 10월 생산량 기준
감산 이행률 60%, 비OPEC 증산, 수요증가에 수급은 '균형'
사상 최고 수준 석유재고와 달러강세는 유가 상승폭 제한 요인
이달석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줄이기로 결정한 이후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동안 공급 과잉과 저유가 상황에서도 시장점유율 확보 경쟁을 벌였던 OPEC은 지난달 30일 열린 총회에서 내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하루 12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은 올 1월 하순 배럴당 22달러로 1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뒤 상승 추세를 보이다가 지난주부터 급등해 50달러를 넘어섰다. 올해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석유시장에 만연하던 공급 과잉이 완화됐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1분기에는 세계 석유 공급이 석유 수요를 하루 110만배럴 초과했으나, 2분기 이후에는 그 규모가 20만~30만배럴로 줄었다. 2014년 하반기 공급 과잉과 유가 폭락의 단초를 제공한 미국의 셰일오일(타이트오일) 생산이 저유가 지속과 투자 축소로 본격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2017년에도 국제 유가는 석유 수급은 물론 세계경제 상황, 달러화 가치, 지정학적 사건, 기후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내년에도 여전히 수요와 공급이 유가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수요보다 공급 측면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OPEC이 얼마만큼 감산 합의를 실행에 옮길 것인지와 미국 셰일오일 생산 감소 추세가 계속될 것인지가 수급 균형의 회복 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먼저 OPEC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다시 산유량을 조절하기로 한 것은 석유시장에서 의미있는 변화다. 사우디는 지난 2년 동안 셰일오일 등 고비용 원유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기 위해 저유가를 용인하며 생산을 늘려왔다. 하지만 사우디는 저유가가 당초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재정 상황이 악화되는 데다 2018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어 유가를 부양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美 셰일오일은 올해보다 감소
그런데 OPEC 회원국이 합의한 감산 물량과 전체 생산한도인 하루 3250만배럴이 지켜질 가능성은 작다. 과거 사례를 보면 OPEC이 감산에 합의해도 합의사항을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사우디와 그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에 국한됐다. 이를 감안하면 감산 이행률은 60%인 하루 70만배럴 정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OPEC 14개 회원국 중 이란과 리비아, 나이지리아는 감산 대상에서 제외됐고, 인도네시아는 순수입국이란 이유로 회원국 자격이 유보됐다. 이란은 서방국의 제재 이전 생산 수준을 고려해 하루 9만배럴의 증산이 허용됐고, 리비아와 나이지리아는 내전과 정정 불안으로 생산 차질을 빚고 있어 생산한도를 두지 않았다. 최근 리비아와 나이지리아의 생산은 상황이 개선되면서 회복세에 들어섰다. 이들 두 나라에서 예상되는 생산 증가분은 각국 정부가 공언하는 증산 가능량의 절반만 잡아도 하루 40만배럴이 된다.
감산 이행과 세계 경기에 좌우
이에 따라 OPEC 전체의 감산 물량은 하루 30만배럴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OPEC의 감산 기준은 역대 최고인 지난 10월의 생산 실적인데, 올해 연평균 생산 추정치보다 약 50만배럴 많은 양이다. 그러므로 감산 합의가 내년 말까지 유지되더라도 내년의 OPEC 생산은 올해 평균보다 오히려 2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OPEC은 러시아 등 비(非)OPEC 산유국과도 감산 공조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유전지대에서는 기후 여건상 감산을 위해 유정을 폐쇄했다가 복구하기가 어렵다. 러시아는 감산보다 신규 유전의 가동을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증산을 억제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내년 미국의 원유 생산은 감소세는 현저히 둔화하겠지만 올해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에 대응해 셰일오일 생산자들이 비용을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생산방법을 찾았지만, 유가가 배럴당 55달러는 넘어야 평균적인 손익분기가격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포함한 비OPEC 전체의 2017년 생산은 캐나다, 카자흐스탄, 브라질의 신규 유전 가동에 따른 생산 증가에 힘입어 올해보다 하루 20만~40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2017년 석유 공급은 OPEC과 비OPEC을 합쳐 올해보다 하루 40만~60만배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7년의 세계 석유 수요는 인도 등 아시아 신흥국의 소비 확대로 전년 대비 130만배럴 정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 수요 증가분이 석유 공급 증가분보다 70만~90만배럴 많은 양이다. 올해 연평균 공급 과잉이 50만배럴 안팎으로 추정되므로, 2017년 들어 세계 석유시장은 공급 과잉이 모두 해소될 전망이다. 비록 느슨한 형태지만 OPEC이 감산 합의를 통해 최대한 증산을 억제하려는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세계 석유 수급의 균형 회복은 2017년 국제 유가 상승의 주요인이 될 것이다. 다만 사상 최고 수준으로 누적된 석유 재고와 달러화 강세는 유가의 상승폭을 제한할 것으로 보인다. 2017년 평균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52~55달러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평균 두바이유 가격이 41달러로 추정되므로, 이와 비교해 30% 정도 상승한 수준이다. 그러나 OPEC과 러시아의 감산 이행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타나면 유가는 추가로 상승할 것이다. 반대로 세계 경기가 침체되거나 리비아, 나이지리아의 생산 회복이 더 빠르게 이뤄지면 유가 상승폭은 더 작아질 것이다.
低에너지소비구조로 전환해야
국제 유가의 상승은 한국 경제에도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유가 상승에 따른 산유국의 경기 회복은 수출 증가 등 대외 수요를 진작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가 상승은 전반적인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부문에선 실질구매력 악화에 의해 소비지출이 감소하고 기업부문에서는 생산비 증가에 의해 투자지출이 감소해 내수 경기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 산업별로는 부가가치 생산 단위당 석유 사용량이 많아 유가 하락기에 혜택을 누린 업종들이 유가 상승으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석유는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 변동성이 크다는 특징이 있다. 즉 석유의 수요와 공급이 단기간 내에 탄력적으로 조정되기 어려워 작은 규모라도 수급에 불균형이 발생하면 유가는 큰 폭으로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밖에 없다. 국제 유가의 극심한 변동은 경제주체인 가계와 기업, 정부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고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낮춘다. 한국 경제가 유가 등락의 충격을 적게 받도록 저에너지 소비구조로 전환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이달석 <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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