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 트럼프노믹스 시대를 앞두고 외환시장에 닥친 변화의 파도가 거세다. 달러화·비(非)달러화 간 표정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각국의 통화정책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자본유출 우려감도 증폭되고 있다.
◆ 트럼프 정부, 인프라투자 기대감↑…달러화 14년여만에 '최고'
지난달 초 도널드 트럼프가 시장의 예상을 뒤엎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글로벌 외환시장은 '트럼프 쇼크'가 불어닥치며 요동쳤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미국 달러화였다. 트럼프 정부가 인프라 투자 확대 및 각종 규제 완화, 감세를 통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하면서 달러화에 수요가 몰린 것이다.
수요 증가는 달러 가치 폭등으로 이어졌다. 유로화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가 101.91까지 오르며, 2003년 3월 이후 13년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채권금리가 치솟은 점도 달러 강세를 심화시키는 배경이 됐다. 트럼프의 사회기반시설 투자 및 재정 확대 정책이 국채 발행 증가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진 것이다. 국채 발행이 증가하면 국채 시장은 과잉공급에 빠져 국채가격 하락·국채금리 인상을 야기한다.
여기에 미국 중앙은행(Fed)의 12월 금리인상 가능성은 달러화 강세 하단을 지지하는 상황이다. Fed는 오는 13~14일 양일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연다. 시장에선 미국 경제가 견고하게 성장하는 만큼 12월 금리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달러화가 치솟으면서 원화, 위안화 등 신흥국 통화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은 지난 11월 초 1130~1140원대 거래를 이어갔으나 트럼프 당선 이후 1170~1180원대에서 거래중이다.
중국 위안화도 트럼프 당선 이후 가파른 약세 국면을 이어가며 '1달러당 7위안'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위안화는 지난달 25일 달러당 6.9168위안으로 치솟으며 2008년 6월11일(6.9209위안)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현재 중국 정부는 수출 방어 등을 이유로 위안화 약세를 용인하고 있다. 또 트럼프 당선자가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만큼, 시장에 적극 개입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란 분석이다. 원화 및 위안화 약세가 가팔라질 경우 한국과 중국 시장의 자본유출은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화, 유로화 등 선진국 통화도 마냥 웃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엔화의 경우 약세가 지속되면서 증시 상승 및 기업의 이익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평가다. 엔화 약세가 장기화되거나 낙폭이 과대할 경우 수입 물가를 상승시켜 소비자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줄수 있어서다.
유로화도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화 강세에 짓눌리고 있다. 문제는 유로화에 상승 모멘텀(동력)을 줄만한 요인이 내년에도 부재하다는 것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이탈리아의 국민투표 부결로 EU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아서다. 내년에는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들의 선거도 줄줄이 예정돼 있어 정치 불확실성은 가중될 전망이다.
◆ "올해 원·달러 환율 거래범위 '1160~1210원'"
정성윤 현대선물 연구원(사진)은 미 달러화에 대해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전까지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의 당선이 미국 통화정책에 불확실성을 주는 만큼, Fed 위원들의 스탠스를 확인해야 우려감이 해소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정 연구원은 12월 FOMC에서 금리 인상이 단행될 경우엔 달러화 강세가 주춤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는 "Fed는 12월 금리를 인상하고 내년 2회 인상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높다"며 "즉 시장의 우려감을 불식시키고 점진적인 금리인상 기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달러화는 단기 조정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분석이다.
정 연구원은 "다만 트럼프의 정책이 가시화되는 과정과 경제지표 결과에 따라 Fed의 통화정책 스탠스는 변할 수 있다"며 "내년까지 미국 금리인상 이슈는 중장기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12월 FOMC 이후 달러화 강세가 제한되더라도, 원화가 강세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미국의 대규모 재정투자에 따른 신흥국의 경기 개선세가 기대만큼 현실화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현재 트럼프가 내놓은 대표 정책은 인프라투자 확대다. 이에 원자재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신흥국에 대한 기대감 및 투자심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가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연구원은 "트럼프노믹스의 큰 그림은 감세, 재정 지출 확대로 인한 재정적자를 원자재 수출 국가(신흥국)에 대한 관세 부과로 메우려는 것"이라며 "즉 미국 수요에 대한 신흥국의 수혜가 과거보다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그는 달러화가 단기 조정을 받은 이후 다시 강세 흐름을 되찾을 것으로 봤다. 달러인덱스는 100포인트대 전후에서 지지를 확인한 후 다시 상승을 시도할 것이란 분석이다.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연말까지 1160~1210원 사이에서 거래될 것으로 보고, 연평균 환율은 1165원대로 전망했다. 그는 "내년 트럼프노믹스의 정책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특히 원화의 달러 대비 절하폭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올해보다 약 2.2% 상승한 1190원 전후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 연구원은 원화 만큼이나 중국 위안화 흐름도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는 한 위안화 약세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위안화 환율은 달러당 6.8~7.33위안에서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엔화의 경우 약세 흐름이 지속되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트럼프의 취임 이후 일본 통화정책(엔화 약세)에 대한 직접적 압박이 심화될 수 있다"며 "내년 엔화 약세가 전개되더라도 달러당 119엔선 이상을 뚫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미 FOMC회의 만큼이나 글로벌 관심사로 떠오른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를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ECB는 적어도 내년 6월말까지 양적완화를 연장한 후 스탠스를 재점검할 것"이라며 "매입대상 채권 부족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느냐에 따라 유로화 방향성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트럼프노믹스 시대 ①경제-1]"세계 경제, 트럼프 목에 달릴 방울이 중요"
☞ [트럼프노믹스 시대 ①경제-2]박상현 "美 국채금리 2.5% 넘으면 충격 올 것"
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csun00@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