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사업중 본계약 '0'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
"수주 확실하다" 했지만 MOU 단계서 지지부진
250억달러 금융지원도 '주춤'…수출입은행 "세부사항 논의 중"
미국 1조달러 시장 '그림의 떡'
한국이 수주한 미국 토목공사 50여년간 달랑 3건 그쳐
[ 이해성 기자 ]
소문으로 나돌던 정상회담 치적에 대한 과장 홍보가 ‘50조원 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한국과 이란 정상회담 직후 발표된 사업비 50조원 규모의 이란 신규 인프라사업 30개 중 본계약으로 이어진 사업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사업은 5월 발표 내용과 비교할 때 사업 단계가 오히려 후퇴했다. 사업비 규모가 크게 줄어든 프로젝트도 확인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지난달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당시 경제수석)은 5월 이란 현지에서 “수주가 확실시되는 프로젝트만 집계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구속력 없는 MOU 단계
5월 발표 당시 수주를 눈앞에 뒀다던 대림산업의 이스파한~아와즈 철도사업은 계약 구속력이 약한 양해각서(MOU) 단계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이 추진 중인 차바하~자헤단 철도공사(17억달러)와 비드 볼란드 2차 가스 정제시설(30억달러)도 여전히 MOU 단계에 머물고 있다. 대우건설의 테헤란~쇼말 고속도로(10억달러), 대우·현대건설의 바흐만 정유시설(20억달러)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진척이 있는 사업은 대림산업의 박티아리 수력발전(19억달러) 정도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본계약을 협의 중이며 이르면 내년 초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역시 대림산업이 추진 중인 이스파한 정유시설 개선사업(16억달러)은 최근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대부분의 사업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건 대출구조협약(FA)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어서다. 한국 업체가 자금을 먼저 투입해 시설을 완공하고 나중에 이자를 붙여 자금을 회수하는 턴키(EPC) 사업에선 FA와 EPC 계약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진다. 국토부 관계자는 “두 가지가 제대로 안 되면 수주를 한다 해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대우건설 해외사업 관계자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규제가 풀렸다고 하지만 여전히 달러 결제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십조원 금융패키지 실익 있나
‘건국 이래 최대’라던 250억달러 금융지원패키지도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 사업에 대해 수출입은행은 90억달러 FA를 포함해 최대 150억달러 지원 계획을 세워 놨다. 이중 90억달러는 이란 정부의 지급보증을 토대로 직접 발주처에 제공한다. 수출입은행은 회사채 등을 통해 이를 자체 조달할 방침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프로젝트가 사정권에 들어오면 금융지원을 본격화할 수 있지만 그런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무역보험공사는 이란 프로젝트 발주처가 대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56억달러 한도 내에서 보증을 서기로 했다. 무보 관계자는 “변수가 너무 많아 협상 기간이 계속 길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건설 수주 10년 만에 최저
업계는 오일달러에 기반한 중동 시장을 떠나 선진국 시장 진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인 ‘1조달러 인프라 시장’은 그림의 떡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중동 등 신흥 시장에선 중국 업체의 가격 경쟁력에 밀리고 미국 등 선진 인프라 시장에선 기술 경쟁력에서 뒤처진다는 지적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1965년 11월 한국이 첫 해외 인프라사업(태국 고속도로)을 수주한 뒤 50년간 수행한 미국 본토 발주 토목공사는 단 3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건설사의 수주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올 해외건설 수주액은 8일 현재 234억달러로 2006년(164억달러)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혜주 현대건설 전무는 “기본설계와 중간설계(FEED) 등 고부가가치 기술을 확보하고 금융투자 모델을 다각화해야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