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은 사력을 다해 싸운 니코의 해였다. 그리고 2006년 F1에 입성한 그가 10년 만에 맺은 결실이기도 했다. 아버지이자 1982년 F1 월드 챔피언인 케케 로즈버그로부터 '영재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스티어링휠을 잡은 니코. 그는 어떤 레이싱 인생을 걸어왔을까. F1이 그의 인생을 연도별로 정리했다.
2009년 : 니코 로즈버그는 그의 머신에서 최대치를 끊임없이 추출해냈다. 모든 그랑프리(GP)에서 Q3까지 진출했으며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포디움에 가까워져 갔다. 독일과 헝가리GP에서 가장 좋은 결과인 4위를 차지했다. 그는 윌리엄스를 떠난다는 발표와 함께 2010년 새로운 팀인 메르스데스AMG페트로나스와 계약했다.
2010년 : 메르스데스 MGP W01 머신의 완성도는 부족했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니코는 좋은 성적을 냈다. 새로운 팀 메이트는 7회 월드 챔피언의 전설, 미하엘 슈마허였다. 니코는 F1에 복귀한 미하엘 슈마허에 우위를 차지하며 여러 차례 포디움에 올라섰다. 최종 포인트가 슈마허 포인트의 두 배에 달했고, 그는 최종 7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1년 : 젊은 피이자 유망주인 니코 로즈버그, 살아있는 전설인 미하엘 슈마허. 둘은 F1의 가장 완벽한 드라이버 패키지라는 평가를 받았다. 니코는 2011년 시즌에도 팀 메이트 슈마허를 이기고 드라이버 순위 7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메르스데스AMG페트로나스의 MGP W02 페이스 부족은 한계가 있었다. 여전히 그가 최상의 결과를 얻기는 어려웠다.
2012년 : 마침내 니코가 F1에서 첫 트로피를 수확했다. 시즌 세 번째 GP인 중국 상하이GP가 무대였다. 예선 1위로 폴포지션을 차지한 그는 결선에서도 선두 자리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영광은 니코에게 오래 머물지 안?다. 메르스데스AMG 페트로나스는 퍼포먼스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니코는 한 차례 우승에도 불구하고 최종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슈마허는 2012년을 마지막으로 F1 무대를 떠났다.
2013년 : 니코는 2013년 새로운 팀 메이트를 맞았다. 맥라렌에서 둥지를 옮긴 루이스 해밀턴이었다. 두 동갑내기 드라이버는 점점 격하게 경쟁했고 머신의 경쟁력은 날로 향상됐으며 이에 따라 두 드라이버의 성적도 상승했다.
니코는 팀 오더로 말레이시아GP의 포디움을 놓쳤다. 이후 연이어 세 차례 기회를 잡게 됐다. 결국 그는 모나코GP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했다. 그는 이후 영국GP에서 다시 승리하며, 전체 6위를 차지했다.
2014년 : 니코는 예선에서 메르스데스 팀 메이트인 해밀턴에 우위를 차지했다. 그는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W05로 11개의 폴포지션을 확보했다. 그리고 5회 우승과 함께 연속 10회 포디엄에 올랐다. 그는 해밀턴과 마지막까지 월드 챔피언 타이틀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결국 그는 라이벌인 해밀턴의 레이스를 제압하지 못했고, 최종 2위로 시즌을 마쳤다.
2015년 : 메르스데스 팀 메이트인 해밀턴이 2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올랐고 니코는 2위로 마무리를 했다. 여섯 번의 우승, 일곱 번의 폴포지션에도 불구하고 기록한 안타까운 결과였다. 2015년 시즌은 그에게 가혹했지만 2016년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2016년 : 니코가 2016년을 시작하면서 F1의 첫 4개 레이스를 쓸어 담았다. 우승과 함께 드라이버 순위 1위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해밀턴은 시즌 중반 다시 반격에 나섰지만 니코의 방어벽은 예상보다 튼튼했다. 해밀턴은 마지막 4개 그랑프리를 석권하며 맹렬하게 추격했다. 하지만 판세를 뒤집진 못했다. 니코 로즈버그는 생애 첫 월드 챔피언 타이틀을 따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고, 월드 챔피언 자리에 오른 지 일주일 만에 은퇴를 발표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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